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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Feb 06. 2022

끝은 또다른 시작이니, 북유럽 신화

2022년 1월의 새로운 시도인 책 | 북유럽 신화 (닐 게이먼)

책속의 말

“수르트의 불은 세계수를 건드리지 못하는데, 이그드라실의 몸통에 인간 두 명이 안전하게 몸을 숨기고 있어. 여자의 이름은 ‘생명’이고 남자의 이름은 ‘생명에 대한 갈망’이지. 그들의 후손이 지상에서 살게 될 거야. 이건 끝이 아냐. 끝은 없어. 그저 옛 시대의 종말일 뿐이지.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기도 하고. 죽음 뒤에는 항상 부활이 따라와. 넌 패한 거야.”




1월의 새로운 시도 차원의 책은 “북유럽 신화”다. 이제껏 그리스‧로마 신화는 홍은영 작가님의 만화책으로든, “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든 충분히 접해본 적이 있었고, 올림푸스의 12신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 외울 정도로 조기교육이 완료된 상태였다. 그에 반해 북유럽 신화에 관해 아는 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마블 영화로 인해 오딘, 토르, 로키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았다. 심지어 마블 영화에서는 로키가 오딘의 양아들이었는데, 원래 북유럽 신화에서는 로키는 오딘의 의형제였다! 난 그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처음 접하는 북유럽 신화는 그리스‧로마 신화만 알고 있던 내게는 충격적이었다. 일단 신이 너무….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하찮았다. 분명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도 신이 언제나 멋있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하찮다니. 예를 들어 로키는 자신이 냈던 꾀가 신들에게 비난받으니까 다른 꾀를 내는데, 그 꾀가 자신이 암말로 변신하여 힘센 종마와 짝짓기를 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잘되긴 했다만, 이게 다가 아니다. 역시 이 또한 로키가 낸 꾀인데, 토르를 신부로 분장시켜 거인에게 내보이는 장면이 있다. 누가 봐도 새신부의 모습은 아닌 토르를 우격다짐으로 신부라고 하는 게 우스꽝스러웠다. 게다가 이들은 나름 북유럽 신화의 주요 신으로 일컬어지는 이들이다. 무엇보다 그리스‧로마 신화와 제일 다른 점을 꼽자면, 라그나로크라는 세계 종말이 와서 다 함께 멸망해버린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충격적인 이야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제일 궁금했던 것은 대체 왜 멸망이라는 확실한 끝이자 시작이 있는 것일까, 였다. 보통 신이란 불멸의 존재로 묘사되지 않던가. 닐 게이먼의 북유럽 신화는 신화의 일화를 짧게 여러 편 소개해서 재밌게 읽을 수 있지만, 여타 설명을 곁들이지는 않는다. 본인만의 각색을 하며 게이먼의 해석이 들어갔을 수는 있어도, 왜 북유럽 신화가 이런 양상을 띠는지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나는 나름대로 북유럽에서 이런 신화가 발달한 까닭은 북유럽이라는 춥고 척박한 땅에서 신마저도 이것을 이겨낼 수 없다고 생각한 점이라고 추측했다. 먼저 조승연의 탐구생활 유튜브 영상을 한 편 보았는데, 내가 추측한 바와 비슷한 배경 설명을 하였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힘을 인정한 문화권이라는 것이다. 내가 추가로 읽은 논문에서도 물질세계의 근원이 악하다는 독특한 인식(북유럽 신화에서 세계의 창조는 거인을 살해하며 시작한다.)은 스칸디나비아 지방의 혹독한 추위와 척박한 삶의 환경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세계 종말인 라그나로크도 이 맥락에서 기존의 물질세계가 악하기 때문에 종말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이 도래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고 한다.

북유럽 신화를 읽으며 제일 재밌었던 부분은 역시 그리스‧로마 신화와는 다른 신의 양상이다. 북유럽 신과 그리스‧로마 신은 다신론이고 흠결 있는 신이라는 유사점도 있지만, 차이점이 도드라진다. 먼저 그리스‧로마 신은 질서, 거인은 무질서를 뜻하며 신은 일찌감치 거인을 이겨 질서를 유지한다. 반면 북유럽 신은 거인과 경계가 불분명하며 끊임없는 대립을 이룬다. 그리스‧로마 신이 인간을 위해 불을 훔쳐 오는 희생을 서슴지 않는다면, 북유럽 신은 인간을 위해 희생하기보다 그들이 인간 영웅의 모습에 가깝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이 대부분 불멸인 것에 반해 북유럽 신은 필멸이기 때문이다. 신의 최후가 모호한 그리스‧로마 신과 달리, 북유럽 신은 온 우주를 통치하고, 신비한 능력을 쓸 수 있지만 그래도 필멸을 받아들여야 한다. 주요 신이라 해서 이를 피해갈 수는 없다. 이는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이 바이킹 시대의 거칠고 냉혹한 삶을 받아들여야 했고, 그게 반영된 것이라 보인다는 의견이 많다. 혹은 인간 또한 북유럽 신과 필연적으로 같은 운명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심지어 그들은 운명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죽음마저 모두 결정되어 있고, 라그나로크에서 거의 모든 신이 죽는다는 예언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명예와 유산을 위해 전투를 준비한다.

이 책에서는 거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지만, 사실 북유럽 신화의 여신은 독립적이며 동등한 발언권을 지니고 명예를 중요시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여신이 언급되는 것은 각종 신들의 내기의 상품처럼 걸리는 미의 여신 프레이야 외에는 그다지 많지 않다. 북유럽 여신이 지닌 특수한 능력은 기독교를 만나며 부정적인 이미지로 부각되며, 점점 남성 위주의 기록 사이에서 사라져간다. 그 부분이 조금 아쉬웠지만, 이 한 권의 책으로 내가 북유럽 신화의 모든 측면을 보았다고 하기에는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무궁무진하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익숙한 내게 새로운 재미를 주는 북유럽 신화는 사실 우리가 접하는 미디어에 이미 변용되고 있었다. 내가 그 레퍼런스를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유명한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 외에도 톹킨의 세계관에 등장하는 엘프나 드워프도 북유럽 신화의 영향을 받았다. 마블의 토르나 로키는 말할 것도 없다. 앞으로 우리가 마주칠 북유럽 신화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기대된다. 


참고문헌

⚡️세계의 종말?! 북유럽신화 배경 설명ㅣ오딘: 발할라 라이징, 조승연의 탐구생활,  https://youtu.be/VIcKtUqVF8Q

Norse Gods vs Greek Gods: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https://scandinaviafacts.com/norse-gods-vs-greek-gods-similarities-and-differences/

조연우 (2020). 북유럽 신화의 미국화: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를 중심으로. 종교학연구, 38, 115-137

전경옥 (2003). 북유럽 신화를 통해 본 신화 윤색의 정치사상. 정치사상연구, 9, 6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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