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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Feb 12. 2022

인종주의는 자연스럽지 않다, 낙인찍힌 몸

2020년 9월의 여성 작가의 책 | 낙인찍힌 몸 (염운옥)

책속의 말

인종은 인종적 범주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어온 것이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민족이나 계급 같은 개념이 태초부터 존재한 게 아닌 것처럼 인종 개념도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산물이다.
인종, 계급, 젠더의 교차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특정한 차별에만 매달릴 때, 어느 차별이 더 끔찍한가에만 집중해 차별의 우열을 겨루는 소모적인 논쟁에 빠져들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작 차별의 복합적인 본질을 놓치고 차별의 구조도 비판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차별과 혐오는 농담처럼 던지는 사소한 말 속에도 깃들기 때문이다. 혐오의 말을 하지 않는 것만큼 중요한 건 듣는 귀를 여는 일이다. 알아듣는 이에게 비명은 소음이 아니라 목소리가 된다.




트럼프 정권이 출범한 지 3년 반, 미국에서는 백인 경찰이 흑인인 조지 플로이드 씨를 과잉 진압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으로 시위가 촉발됐다. 이는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인권도 소중하다) 운동에 더 큰 불을 지폈다. 중국 우한 지역에서 시작되었다는 코로나-19로 인해 길을 걸어가는 동양인이 그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폭행 당하는 사건도 발생하였다. 한국에서도 인종차별은 먼 문제가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9년도 인권상황 실태조사 연구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이주민 310명 중 한국에 대체로 인종차별이 존재한다는 데 동의하였다는 비율이 68.4%로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인종차별은 국내에서도, 국외에서도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책을 쓰기 전 저자가 인종주의에 대해 연구하겠다고 했을 때, 2000년대 초반에는 한국에서 인종주의는 그다지 관심 받는 주제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6년 저자가 인종주의에 대한 책을 쓰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시의적절한 주제라고 하는 반응이 많았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점차 첨예해지는 고민이 된 것이다.

저자는 '몸'을 중심으로 인종주의의 역사를 풀어간다. 저자가 첫머리에서 인종주의는 타인의 몸을 보는 주체의 시선에 의존해 주체와 타자의 차이를 생물학적 속성으로 환원시켜 인종화된 타자의 몸에 대한 온갖 담론을 생성하는 데 인종주의의 핵심이 있다고 했다. 즉 타인의 몸에 낙인을 찍고 배제하는 과정인 것이다. 인종의 개념과 인종주의의 역사를 살펴보며 흑인, 흑인 여성, 유대인, 무슬림의 사례를 통해 인종화된 몸이 무엇이며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는 과연 인종주의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한국의 인종주의를 알아보고, 한국 다문화 담론을 비판한다. 바로 내 살갗에 닿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공감이 될 만한 이야기가 많다. 이런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서인지, 이 책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잘 읽히며 인종주의에 대한 개념과 이해가 부족했던 나도 어렵지 않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놀라게 되는 것은 인종주의가 근대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인류의 긴 역사에서 인종주의가 차지한 역사는 어찌 보면 그렇게 길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는 인종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생각해보면 나도 여성이라는 몸으로 타인에게 낙인찍히는 몸임과 동시에 비장애인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나는 타인을 낙인찍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 또한 이 사실을 너무 자주 잊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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