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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Feb 12. 2022

핑크를 사랑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 Pink Book

2020년 9월의 여성 작가의 책|Pink Book (케이 블레그바드)

책속의 말

어린 시절에 매우 전형적인 이른바 핑크 기를 거친 다음, 핑크를 거부하는 시기로 넘어 갔다. 이때는 선머슴처럼 굴었고, 10 대 고스 일원으로서 검은색만 열렬하게 좋아했다. 보통의 여성스러운 차림은 절대 금지였다. 20대 초반에는 핑크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핑크는 지나치게 깜찍하거나 너무 요란하거나 굉장히 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핑크는 계속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쑥 등장하곤 했다. 




나는 핑크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작가가 했던 말처럼 어린 시절 전형적인 핑크기를 거치고, 10대 때 오타쿠 문화를 접하며 검정을 숭배하게 되었다. '핑크는 어쩐지 유약해 보이고 유치해 보여. 간지나는 검은색이 최고지.' 하지만 어릴 때부터 마법소녀는 센터를 차지하는 핑크 소녀만 좋아했던 나, 10대를 거치고 나니 핑크를 좋아하는 것에 거리낌 없어졌다. 지금은 제일 좋아하는 색이 핑크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색을 세 개만 꼽으라면 그 안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색이다.

핑크는 언젠가부터 여자아이의 색으로 완전히 낙인찍힌 듯하다. 예전에 티브이에서 애니메이션 기반 운동화를 광고하면, 남자 아이용 파란색 운동화를 멋있게 한참 보여준 다음, 5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여자 아이용 분홍색 운동화가 스쳐 지나가며 ‘여아용도 있어요’ 생색내던 기억을 떠올려보거나, 한때 여아는 ‘핑크기’를 반드시 거친다며 핑크 드레스와 액세서리에 환장한다는 주변의 이야기(높은 확률로 ‘공주병’이라는 단어와 연결되는)를 들으면 말이다. 요즘은 많이 알게 된 이야기지만, 사실 핑크가 ‘여자 색’으로 자리 잡은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예전에는 성모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하는 하늘색이 여자아이의 색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색이 특정 성별의 색으로 고정되는 데는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굳게 그 도식을 믿게 된다.

핑크를 사회, 문화적인 맥락에서 바라본 이 책은 핑크의 역사와 의미, 핑크를 좋아하던 인물, 핑크로 된 것을 소개한다. 작가의 핑크 일러스트와 함께 보고 있노라면 핑크가 내 생각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고, 그만큼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히려 핑크를 더 알고 싶고, 깊게 탐구하고 싶어지게 하는 매력이 있다.

핑크는 매력적인데 비해 사람들이 많은 오해를 하는 색이다. 이는 아마 핑크가 여성의 색이라고 고정관념이 형성된 것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또한 일종의 여성 혐오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떤 색을 그저 그 색으로 바라보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누군가 그 색을 바라볼 때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느낌을 담기 마련이다. 하지만 적어도 핑크를 향한 지나친 오해는 삼가달라고 핑크의 입장에서 항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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