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여성 작가의 책 | 다락방의 미친 여자
절판으로 중고가가 20만 원에 달하던 책, 수많은 이들이 재판을 울부짖던 그 책이 드디어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우리 독서 모임 멤버 모두 함께 읽을 책으로 이 책을 골랐다.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에 이어 도전할 때가 왔다, 싶었다. 이 책은 1,000페이지가 넘는, 말 그대로 흉기로 쓰일 수 있을 법한 두께를 자랑하기 때문에 나 혼자는 절대 다 읽지 못할 것 같았다. 서문을 제외하고 총 6부로 구성된 책을 2부씩 나눠 총 석 달에 걸쳐 읽게 되었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가 다루는 19세기 여성 작가는 미치지 않고는 작품 활동이 힘들 만큼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글을 썼다. 이들은 이 사회에서 살아가며 나름의 해결방안을, 작가마다 다른 방식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 작가마다 해결방안이 무엇인지 2부부터 6부까지 작가와 작품을 분석하며 제시한다.
1부는 페미니즘 문학의 이론적 측면을 설명한다. 가부장적 문학 이론과 이런 환경에서 여성 작가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알아본다. 유일하게 특정 작품을 통해 해설하지 않는, 수업으로 따지면 OT(그러나 조금 어려운)에 가깝다. 이론적 기초를 다지고 2부부터 본격적으로 여성 작가의 작품을 통해 독해를 시작한다. 그 시작을 2부에서 제인 오스틴과 함께하게 될 것이다. 오스틴은 위장의 귀재였고, 겉의 이야기와 속의 이야기가 달랐다.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속의 이야기는 무엇인지 파헤치는 재미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3부는 밀턴의 영향을 받은 메리 셸리와 에밀리 브론테에 대해 분석하며 괴물과 여성 작가의 관계, 에밀리 브론테가 분신을 활용했던 방법을 알아본다. 4부의 샬럿 브론테는 에밀리 브론테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열이라는 방식을 사용한다. 젠더로 인해 ‘고아 같은’ 위치에서 불안을 느끼던 샬럿 브론테 나름의 탈출구를 찾다 보면 5부의 조지 엘리엇으로 넘어간다. 여성이면서 여성 혐오를 느끼기도 했던 그녀의 양가적 감정은 지금 2022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 6부의 에밀리 디킨슨은 소설도 아닌 시를 쓰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의 이중고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미친 여자가 되었던 작가였다. 자신의 자아를 주장해야 하는 ‘시인’과 자신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여성’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녀는 자신의 삶 자체를 소설로 만들며 문제를 해결한다.
이 책이 출간된 지 40년이 지났는데도 사랑받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제껏 우리는 남성 작가에 익숙했고, 남성 작가가 쓰는 방식, 남성 작가를 읽는 방식을 숨 쉬듯 받아들였다. (꼭 읽어야 할 고전 명단에 남성 작가가 얼마나 많은지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그러나 여성 작가는 또 다르다. 그들이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 남성 작가와는 또 다른 독해가 필요하고, 그 방법을 알려주는 게 바로 이 책이다. 예를 들어, 나는 오스틴의 작품을 좋아해 여러 번 읽었는데도 이 책에서 읽는 방식으로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양한 관점과 당시 배경, 작가에 대한 이해도가 이전과는 다르게 높아지며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도 보인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알면 알수록 세상의 해상도가 높아진다고. 이 책을 설명하기에 좋은 말이다. 이제까지 보는 것과는 다른 세상이 보일 것이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길버트와 구바가 함께 가르친 문학 수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 보면 마치 강의를 듣는 느낌도 든다. 각 장은 유기적인 동시에 장마다 작가와 주제가 확고하므로 마치 교과서처럼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우리 독서 모임처럼 장을 나눠 읽고, 함께 의견을 공유해도 좋을 듯하다. 책에서 여러 여성 작가의 다양한 작품이 나오므로 해당 장과 관련된 작품을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한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제인 오스틴의 “엠마”, 샬롯 브론테의 “교수”,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을 읽게 되었다. 이론적인 면을 이 책을 통해 익히고, 실제로 여성 작가의 책을 읽으며 ‘여성 작가를 읽는 법’ 훈련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