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의 읽고 싶은 책 | 다정함의 과학 (켈리 하딩)
의학계는 오랫동안 사회적 차이를 근본적인 유전적 차이로 오해했다. 하지만 피부색을 제외하면 인종을 정의하는 일관된 유전자 표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흑인과 백인이라는 사실이 현미경 아래서는 무의미하다는 얘기다. 무엇을 담고 있는지 보여주는 유전자형(genotype)이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는 표현형(phenotype)을 물리친다. 같은 피부색을 가진 두 사람이 다른 피부색을 가진 두 사람보다 유전적으로 공통점이 없을지도 모른다. 유전학의 발전은 인종이 생물학적인 개념보다는 '사회적인 개념'이라는 의견에 힘을 싣는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고대 로마 시인인 유베나리스의 시 구절에서 인용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그가 했던 말의 의미는 이와는 조금 다르다고 한다. 오히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기를’ 소망하며, 신체만 단련하는 당대 로마 젊은이를 풍자한 구절이라는 해석이 있다. 유베나리스는 신체가 건강한 것만이 건강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건강을 위해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영양 측면에서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일정 시간 이상의 수면시간을 확보하고……. 이 모든 노력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건강하기 위해 분명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다정함의 과학”에서 저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건강을 신체에 한정하지 않고, 사회적‧정치적‧환경적 조건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영역을 확장한다. ‘좋은 관계’가 성공과 건강, 행복한 삶의 핵심 변수라는 것이다. 운동과 식단의 중요성은 잠시 뒤로 하고, 의사이자 정신의학 교수인 저자는 각종 연구 결과와 자신이 겪고 조사한 사례로 근거를 뒷받침하며 사회적 유대감이 한 사람의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한다. 그뿐만 아니다. 우리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직장에서의 존엄성, 삶에 대한 목적의식—주로 교육을 통해 키울 수 있는—, 심지어 내가 사는 동네의 안전과 공동체 의식, 차별로 인한 임금 격차, 각종 편견, 어린 시절 트라우마와도 관련이 있다.
책의 첫 번째 파트에서 위와 같은 건강의 숨은 요인을 소개한다면, 개인이 어떻게 건강할 수 있는지, 또한 개인의 건강이 어떻게 집단의 건강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 소개하는 게 두 번째 파트인 ‘건강의 본질적 요소’이다. 서로의 유대관계는 집단의 안전망을 만들어낸다. 이를 위해 견고한 신뢰의 관계가 필요한데, 이는 일단 사회의 가장 작은 범위인 '나'부터 선한 행동을 하면서 시작된다. 저자는 어떻게 하면 사회적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지,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제법 구체적으로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각 장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예를 들면 어떻게 직장에서 다른 이를 칭찬하면 좋을지, 내가 사는 동네를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지와 같은 것이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부분은 정부와 정책이 정말 중요할 것이다. 의료계도 변화해야 할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일단 나부터 바뀌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직도 신체라는 틀에 사로잡혀 다정함에서 얻을 수 있는 건강을 놓칠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아주 조금만 더 상냥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뿐만 아니라 건강해질 수 있다면, 타인에게 한 번 웃어주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