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그냥 넘어가나 했더니
베를린 한복판에 서서 낯선 이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린 적 있다. 무려 ‘Go fuxx yourself’라고 말하며 분개했다. 한국어로도 욕 한번 안 하고 살던 때였는데, 오죽했으면 도로 한가운데에서 욕을 했다. ‘곤니치와’ 거리는 것도 모자라 나를 따라다니면서 이상한 얼굴 표정을 짓는 양인을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유럽 남부지방에서 특히 동양인에 대한 비하가 심하다고 느꼈었다. 식당 호객꾼들은 연신 ‘니하오’를 외치기 바빴다. 듣다 듣다 짜증이 나서 ‘나 중국인 아닌데’로 대꾸해도 그다음 돌아오는 것은 곤니치와 정도였다. 그때 당시엔 그런 인종차별 자체가 짜증이 났고 당황스러워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방예의지국 출신답게 참았고, 그것의 임계점에 도달하자 나는 베를린 한복판에서 fuxx yourself를 외친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오래간만에 같은 부류의 무리를 마주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때와 같이 분개하는 감정이 그닥 들지 않았다. 물론 화가 났지만 잠시였다. 세상에, 이렇게 멘탈이 강해졌다니. 그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숱하게 보고 지내온 것들-일일이 나열하기도 귀찮은-과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저 인간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찰나에 낄낄대는 저들은 얼마나 불쌍한 삶을 살고 있나.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또 하나의 평행 이론을 수립했는데, 외국에서 당해보았던 숱한 인종차별과 캣콜링의 주역은 모두 남자였다는 것이다. 휘파람을 불고, 뚫어져라 쳐다보고, 가는 팔을 잡고, 심지어 어떤 에어비앤비에서는 ‘나중에 혼자 다시 와라’며 메시지를 연신 보내 댔다. 전부 남자였다. 니하오는 기본 탑재품이었고.
자고 나라 가진 시야가 고작 그거라니. 한국인이 외국인을 향해 내뱉는 차별적인 시선이 얼마나 절망적인지에 대해서도 익히 알고 있지만, 이런 순간들이 올 때마다 저들이 가진 별것 아닌 알량한 우월감들에 혀를 내두른다. 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