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가 하고 싶어서 눈뜨자마자 설레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부담 없이 나가 빠르게 달렸다가
천천히 달렸다가 반복하며 신나게 돌아다닌다.
페이스가 5분 초반대로 나오기도 하고
끝난 후에도 피곤하지 않다.
오히려 힘이 충전된 듯 몸과 정신이 더 쌩쌩해진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었다.
일해서 피곤한 것도 아니고
무리한 다른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전신이 묵직했다.
다리와 어깨에 덩어리들이 올려져 있는 듯했다.
머리에서는 달려야 한다고 하고
몸은 나무늘보처럼 움직였다.
더 추워지기 전에 많이 달려두고 싶어서
일단 얇은 옷들을 겹쳐 입고 러닝화를 신었다.
'아... 역시 힘들다'
그런데 시작하지 않았으면 몰라도 나왔는데
그냥 쉬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리와 상체가 풀릴 거라는
기대를 스스로에게 주입하며 발을 뗐다.
목을 보호하기 위해 쓴 마스크 안에서 뜨거운 호흡이
양볼을 데웠고 몸과 얼굴에 땀이 흘러내렸다.
자세를 똑바로 하려고 해도 구부정해서
어깨와 팔이 불편했다.
갑자기 온몸이 가벼워지고 부드러워지는
기적이 일어나진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힘들기만 했다.
자세, 호흡, 기분 모두 엉망인 날.
무언가가 쌓였다는 성취감보다는
꾸역꾸역 했다는 찝찝함이 남았다.
마지막 코스를 달리면서 변수, 악조건에서도
중간이상의 실력과 평정심을 유지하는 이들이 떠올랐다.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기본값이다.
중요한 시험날 아플 수도 있고,
열심히 준비한 ppt발표하는 날 노트북이 멈출 수도 있다.
마라톤 대회 하는 날 배가 아플 수도 있고
비가 올 수도 있다.
컨디션관리도 실력이라지만 원치 않았던 일들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난다.
그럴 때 완전히 망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만약 대회 날이었다면
난 어떤 자세로 임하고 평소에 어떻게 준비했어야 하는가?
어떤 상황에서도 그게 무엇이든 중간 이상은하고 싶었다.
얼마나 달렸다. 몇 시간 달렸다.
수치로 표현하는 것에서 초연해야 했다.
숫자를 벗어난 연습과 노력.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을 키우기 위해
새로운 상황에 자꾸 나를 두는 것.
달리기든 인생이든 똑같았다.
꾸역꾸역 달리기를 한 오늘.
찝찝함이 남았지만 무거움 속에서도
예외를 만들지 않기 위해 달렸다.
그리고 내 안 어딘가에 분명히 남아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