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달리기

by librehee


올해 5월 초부터 갑자기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졌다.

호카를 구입하기 전에 장만했던 러닝화가

발에 잘 맞지 않던 탓도 있었지만
분명히 뭔가가 달랐다.
몸이 무거웠고, 호흡도 가빠졌다.
이유를 정확히 모르니 답답했다.
러닝화가 원인일까?
체중이 늘었나?
피로가 누적되고 있는데 인지하지 못하는 걸까?
비타민이 부족한 건가?
근력 운동을 더 추가해야 하는 건가?
고려해 볼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나열하며
하나씩 바꿔봤다.

비타민c를 고용량으로 바꾸고
러닝화도 발에 더 잘 맞는 것으로 장만했다.
스쾃, 런지, 플랭크도 열심히 했다.
일부러 잠자는 시간을 늘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단시간에 페이스가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않았다.

전에는 10km를 오분 초반 페이스로
가볍게 달렸는데 오 분대는커녕 칠 분대가
나오기 시작했다.
포기할 순 없으니 계속해서 달리지만

끓어오르는 화까지 모른 척할 순 없었다.
가볍게 날아다니며 달렸다가 천천히 걸으며
구경도 해야 하는데 내 뜻과 다른 몸에

심하게 힘든 날에는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

양쪽 허벅지에 무거운 주머니를 달고 달리는 듯
발이 푹푹 빠지니 달리기가 하나도 즐겁지 않고 고통스러움만 남았다.
제일 짜증 나는 건 그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이

괴로움의 시간으로 변화하는 중이었다.
아예 달리기를 한동안 쉬어 볼까 했지만
한번 멈추고 나면 다시 달리지 못할 거란
두려움이 더 컸다.
전과 같은 페이스 호흡을 포기하기로 했다.

얼마가 되었건 그냥 '달리기'란 행위만 한다.
두발을 움직이는 것만 한다.
짜증 내지 말고 화도 내지 말자.
이 세 가지만을 머리에 새기고 달렸다.

너무 느린 페이스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솔직하게 인스타그램 올리겠단 다짐도 함께.

완벽하게 불편한 마음으로부터 해소된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체념이 안정감을 주었다.

10월쯤 되자 6분대로 페이스가 돌아왔고
점점 러닝 도파민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가끔 장거리를 뛸 때는
'버텨 버텨 버티라고!' 속으로 외치며
1km를 더 가기도 한다.

만약 그때 다 포기해 버렸다면
러닝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미워하는 마음만 커졌을 거다.
어쨌든 천변을 나갔기에 버티며
다시 탈출구로 돌아왔다.

누군가는 버티는 건 미련하고 자신을 소모시키는
일이라고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한계점을 극복하기 전까지
참고 참아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둘 다 맞는 말이고 버틸지 말지는 본인이
선택하는 거다.
나에 경험에 따르면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일은 고통스럽지만, 다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보다 버티고자 하는 의지가 더 컸다.

버팀 속에서 나는 오늘도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