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기

by librehee

겨울이라 추운 건 당연한데

뒷머리까지 추운 날은 달리는 게 망설여진다.

혹시 용감하게 나갔다가 감기 몸살에

걸리는 건 아닌지,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은 건

아닌지. 이리저리 핑계를 대본다.

창문을 열고 슬쩍 체크해 보니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잘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10km를 달려야 개운하지만 무리하지 않기로

한다. '일단 5km만 가보자! 그래도 괜찮으면

조금 더 달려보지. 뭐. 빠를 필요도 없고.'

괜히 혼잣말이 많아지며 나를 달래고 있다.

예상했던 것보다 춥진 않았지만

옆으로 흐르는 물은 얼고 사람도 얼마 없었다.

오늘은 5km만 맛보기로 했으니 괜찮다.

막상 나오고 나니 더 달려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달리는 동지가 또 있나 두리번거려보고,

잠깐 서서 챙겨간 휴지도 코도 풀어본다.

웃음이 나왔다.

눈을 부릅뜨고 기를 모으는

게임 캐릭터가 된 듯 속도를 내서 달렸다.

'추운 날 나오니 웃기고 대단한 역경을 이겨낸

사람 같군. '

반환점을 돌아오며 속도를 줄인다.

집까지 멈추지 않아야 산다는 경고음이

울린다. 갈 때보다 바람이 차고 세졌다.

빠르게 달릴 수 없으니 조금은 종종걸음으로

집 근처 카페도 기웃거리고 빵집에도 뭐가

있는지 살펴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나이키어플을

체크한다. 페이스가 엄청 느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느리지 않았다.

컨디션 차이는 있지만, 차오르는 숨에 땀까지 뻘뻘 흘리며

10km를 달린 페이스와 슬슬 거리를 구경하며

달린 페이스가 큰 차이가 없는 걸 보니

후자에 당연히 정이 더 간다.


같은 거리를 가는데 모든 과정이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 보다 이왕 가는 거 즐겁게 여기저기 둘러보며

가는 게 훨씬 행복하지 않은가. 숨차지도 않고.

그때 '톺아보다'란 말이 떠올랐다.


톺아보다: 샅샅이 톺아 나가면서 살피다.


흔히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한다.

자신만의 페이스와 길이 있으니 길게

봐야 한다고. 바로 발 밑만 보고 가야 할 때도

있고 시선을 아주 멀리 두고 갈 때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을 피할 수 없고 반드시 가야 한다면

'톺아보기'를 잊지 말아야겠다.

자음과 모음이 조합된 모양을 보니 튼튼하고

믿음직스럽게 생겼다.

내가 가는 길을 톺아보면서 웃기도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악수도 하며

씩씩하게 걸어가야지!


추운 날 달리러 나갔다가 감사한 깨달음을

얻고 돌아온 오늘의 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