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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일 Jan 10. 2019

제22회 - “한국 뮤지컬, 무엇을 어떻게?”(2)

 내가 한국 뮤지컬의 발전을 위해 어떤 일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한국 뮤지컬 전체 규모를 한꺼번에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일 것이다. 그래서 그 작은 부분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우선은 현재 한국 뮤지컬 현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작품들은 어떤 성격으로 기획 또는 창작되는지 살펴본다. 나는 대략 여섯 가지로 나누어 본다.    


 첫 번째는 극단의 자체 창작 및 제작이다. 뮤지컬 전문 극단을 표방한 극단이든지, 넌 뮤지컬(non-musical) 작품을 공연하다가 뮤지컬이 장사가 된다는 것을 깨닫고 뮤지컬을 만들어 공연해보겠다고 하는 극단이든지 간에 자신들이 극단이기에 의무감으로라도 창작해서 올리는 작품. 그런데 제작사의 제작 개념이 아닌, 극단의 식구끼리 뭉쳐서 한다는 개념으로 뮤지컬 공연을 올리는 시대는 지났다. 아직도 극단이 뮤지컬 작품을 창작해서 공연하는 극단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그 극단에 작가(주로 연출을 겸하고 있는)가 있더라도 뮤지컬 극작과 작사에 대한 체계적 교육과정을 가진 극단 소속 작가는 거의 없다. 더구나 뮤지컬 창작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전문 작곡가를 단원으로 가지고 있는 경우 역시 거의 없다. 제작사도 아니고 전문 창작인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이런 경우의 작품들은 아마추어 냄새가 난다. 이런 구조의 극단으로부터 뮤지컬 대본과 음악 창작을 제안받으면 뮤지컬 전문 작가와 작곡가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작업을 회피하게 된다.    


 두 번째는 제작사가 뮤지컬로 만들만한 소재를 결정하고 뮤지컬 제작을 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 어떤 실화적 사건이나 다른 장르나 양식의 1차 저작물(소설, 공연작품, 영화, 만화, TV 드라마 등)을 뮤지컬로 제작한다. 그런데 제작자가 선택하는 1차 저작물이 이미 저작권 시기가 끝난 고전과 같은 작품이면 별 문제가 없지만 누군가 그 작품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으면 그 저작물에 대한 사용권을 원작자와의 계약을 통해 획득해야 한다. 요즘은 거대 자본을 가진 기업들 간에 1차 저작물에 대한 사용권, 즉 원작을 다른 장르의 2차 저작물로 만들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려는 치열하면서도 소리 없는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어떤 제작자는 설마 이 작품의 원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몰래 뮤지컬로 만들어 이렇게 조용히 올리는 것까지 알랴하면서 그냥 제작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그 원작이 해외의 작품일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엄연한 도둑질이며 나아가 국제적 범죄이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동시대의 1차 저작물을 뮤지컬로 만드는 것은 제작자들에게는 매력적인 경로이다. 왜냐하면 뮤지컬은 관객이 그 작품이 무슨 내용인지에 대한 정보를 얻고 나서 관람을 결정하곤 하는데, 이미 성공한 다른 장르의 작품은 관람권 판매에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해외의 명작들 역시 처음부터 공연을 위한 뮤지컬로 제작하기 위해 창작된 것들이라기보다는 잘 알려진 원작을 뮤지컬로 만든 2차 저작물이다. 이런 경우 원작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고심하기도 하지만 사실 원작의 덕을 보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제작사들은 그런 뮤지컬 작품이 원작에 부끄럽지 않을 만한 결과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고, 또 그렇게 되면 다행이지만, 어떤 이들은 노력을 통한 완성도보다는 원작의 이름에 승부를 걸려는 유혹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이런 경우 돈이 되면 무엇이든 한다는 기업의 이윤추구가 주된 배경이기 때문에 때로는 문화적 해악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제작사가 그 작품을 위해 작가와 작곡가를 섭외한다. 그런데 제작사가 뮤지컬의 소재를 결정하고 그 사용권을 획득하는 데에는 제작사의 대표 개인의 기호가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자신의 꿈을 현실화할 수 있는 작가와 작곡가를 찾는다. (많은 뮤지컬 제작자들이 뮤지컬을 좋아하고 나아가 창작에 대한 강한 욕망도 있지만 자신이 직접 쓸 수 있는 능력은 없다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면서 작가와 작곡가를 섭외한다.) 계약서 안에는 법적으로 고용인이 되는 제작자가 ‘갑’이 되고 피고용인이 되는 작가와 작사가가 ‘을’이 된다. 계약서상으로는, 작품 내용, 즉 대본, 가사, 음악 등에 대한 갑의 요구에 을이 응해야 한다든지, 조금은 돌려서, 을은 갑의 요구에 협조해야 한다든지 하는 말로 갑과 을이 작품을 위해 협력을 해야 한다는 항목이 있다. 그래서 창작인이 제작자의 요구에 따라 휘둘리는 경우가 많아서 창작인들에게는 무척 괴로운 시간을 경험하기도 한다. 제작자와 창작인의 성향, 철학, 수준, 능력, 인간적 됨됨이, 양심 등에 따라 작가와 작곡가는 제작자의 요구에 맞추어 작품을 쓰는 하청업자가 될 수도 있고 협력관계의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제작자와 창작인은 대결과 협력 구도를 가지게 되고 그것은 영원하다.) 가장 우려할 만한 것은 창작의 진행이 창작인의 리듬이 아니라 제작 일정의 리듬에 맞추어야 한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어떤 행사를 위해 기획사가 작품의 작가나 작곡가를 고용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가 두 번째의 경우와 다른 것은 제작사가 아닌 기획사이기 때문에 다른 단체의 행사용 작품 수요에 맞추어 작품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즉, 작품의 기획 의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졸속으로 계획되는 국가 정부나 관 단체의 행사, 기업의 홍보를 위한 행사, 놀이동산이나 박람회에서 공연되는 기획공연 등을 말한다. 전문 공연 제작사가 아닌 행사 기획사가 기획하는 이런 경우는 작품이 중도에 무산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도 눈먼 돈이 가득한 곳이 이곳이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아르바이트 건수로 생각하고 작업을 하곤 한다. 작품 수준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네 번째는 해외의 뮤지컬 작품을 수입해오는 것. 이에 대해서는 본 에세이의 11회와 12회에서 길게 언급을 했기 때문에 반복하지 않는다. 다만 해외 작품의 음악과 대본 사용권만 따내서 새롭게 연출하거나 각색하는 방식과 해외에서 공연된 원작의 그 어떤 것이라도 수정하지 않고 공연해야 하는 클론, 즉 복제 방식이 있다는 것만 언급해본다. 해외의 작품을 복제 방식으로 수입하는 경우, 해외의 작품을 대본과 가사의 번역 외에 다른 표현 지점들, 즉 연출, 조명, 의상, 분장, 안무 등을 바꾸면 안 되는데, 그런데도 각종 뮤지컬 시상식에서 그 작품의 스태프진들이 상을 받곤 한다. 그대로 가져다가 했는데 상을 받는 것에 대해 실소를 하게 된다.    


 다섯 번째는 해외의 제작사가 한국을 마케팅 시장으로 삼아 직접 가지고 들어와서 제작하는 경우.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이 세계 3위의 뮤지컬 시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우리 역시 우리의 작품을 해외로 수출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웨스트엔드나 브로드웨이의 제작사들의 움직임에 대해 관찰할 필요가 있다. 해외 제작사가 한국을 마케팅 대상으로 삼았다면 그들이 가지고 들어오는 작품은 그 출발점이 어떤 기획으로 시작되었건 간에 이미 해외에서 흥행성을 검증받은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런 작품들이 해외에까지 팔릴 수 있다는 결과보다는 그 작품의 관련 예술가들과 제작자들이 얼마나 헌신적인 노력을 했는가라는 과정이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창작인이 언젠가 공연되리라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그저 쓰고 나서 제작자에게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다. 요즘 조금씩 생기고 있는 뮤지컬 작품 공모전이 이런 길을 걷는 작가와 작곡가에게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아직 아쉬운 점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공모전들이 예술가를 지원하는 기능을 하기보다는 그 공모전의 관련 단체나 지역 단체의 업적으로 치장하려는 움직임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조금 바로 보아야 할 것은, 상금을 걸고 공모전을 개최한다고 좋은 작가와 작곡가가 탄생된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공모전은,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그렇듯이 상을 타지 못하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예술혼을 죽여 버릴 수 있다. 상금이 동기 부여가 될 수는 있지만 많은 사람을 현상금 사냥꾼으로 몰 수 있는 위험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공모 신청 마감일에 맞추어 자료를 준비하느라 작품이 설익은 열매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자칫 실력이 없는 이가 상을 받게 되면 자만심으로 인해 그는 예술가로서 큰 착각에 빠지게 된다. 운이 좋아 상을 받고 나면 다른 사람들의 말이 귀에 질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너무 부정적인 것만 들춰내는 것일까?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많이 변해야 한다.) 이런 공모전을 통해 자신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 길을 개척하는 방법도 있고 작가와 작곡가들이 직접 그 기회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 그것은 제작자에게 대본과 악보, 데모 음악을 보내 제작 의사를 타진하는 것과 독회를 열어 제작자들을 초청해 그 작품을 배우를 통해 선보이는 것 등이다.     


 위의 여섯 가지 방법으로 기획 또는 창작되는 작품이 현재 한국의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이와는 다른 경우가 있을 수도 있지만 대략 그 여섯 가지 정도의 성격으로 작품이 공연되고 있는 것이 한국 뮤지컬의 현재 모습이다. (물론 해외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 속하는 작품들이 한국 뮤지컬 시장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가라는 것은 지적해보아야 한다. 아쉽지만 주류는 역시 해외에서 수입한 뮤지컬이다. 무엇이 아쉽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어차피 좋은 예술 작품이라면 한국의 관객에게 소개되고 감동을 나누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할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나 역시 국수주의적인 태도는 거부감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의 정체성이라는 면을 헤아려볼 때 해외 뮤지컬의 득세가 마냥 좋은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조금은 장황하게 분류하고 설명한 이유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내가 한국 뮤지컬 전체 규모를 한꺼번에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내가 위의 여섯 가지 중에 마지막 경우에 속한 작업을 주로 하기 때문에(물론 가끔 다른 경우에 속한 작업 기회가 오곤 하지만) 그 경우를 전제로 한국 뮤지컬 발전을 위해 내가 제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럼, 이 장의 알맹이 속으로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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