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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일 Jan 10. 2019

제23회 - “한국 뮤지컬, 무엇을 어떻게?”(3)

내가 내 입장에서 한국 뮤지컬을 발전시키기 위해 조금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결국 한국의 창작 뮤지컬 작품을 쓸 수 있는 창작인 양성의 필요성과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대안 제시이다. 뮤지컬계의 가장 오래된 불만이 뮤지컬 전문 작가와 작곡가가 없다는 것이고 동시에 가장 게으른 부분이 그 뮤지컬 전문 작가와 작곡가를 양성하고자 하는 실천이다. 가장 시급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이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뮤지컬 실정에서 작곡가와 작사가가 양성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시급한 이유는, 당장 올해 안에, 내년 안에 좋은 창작 뮤지컬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도리어 훌륭한 예술가를 양성한다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늘 당장 재능이 있는 젊은 사람을 발견해서 그를 교육해서 그가 노력을 하고 언젠가 그의 결과물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시급하다. 그 어떤 일이라도 오늘 우리가 하루 게으르면 그 결과물은 그 하루만큼 늦게 나온다.    


 훌륭한 작가와 작곡가가 언젠가는 등장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인재는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키워지는 것이다. 작곡가와 작사가가 양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면 이제 버젓한 교육기관이 필요하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뮤지컬 창작(작곡, 작사, 극작)에 대한 교육과정은 대학원에, 특히 독립된 학과로 마련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한국의 졸업생들이 활동을 하면서 이제는 많이 알려진 뉴욕대학교의 뮤지컬 창작과(Graduate Musical Theatre Writing Program, Tisch School of the Arts, New York University) 같은 학과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예술이 반드시 학위를 가져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원에 마련되는 것이 좋다고 하는 이유는 이미 작곡이나 극작 관련학과 또는 공연예술 관련학과에서 이미 각 전공에 따른 기초 능력을 갖춘 이들을 뽑아 뮤지컬 창작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작곡이나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기초를 배워야 할 이들에게 뮤지컬 작곡이나 작사 또는 극작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기는 무리이다. 그런데 교육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당장 큰돈이 되는 하나의 사업이 아니다. 개인이 운영하는 학원이야 그렇다 쳐도 요즘은 대학도 당장 돈이 되는 것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뮤지컬 작곡가와 작사가를 훈련시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교육이라는 것이 백년대계라고 하는데 그 결과를 당장 몇 년 안에 거두려고 하니 인재를 길러낼 만한 교육이 될 리가 없다. 교육기관들이 공을 들여야 하는 교육을 포기하고 있다.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니까. 자신이 어떤 그 기관 안에서 어떤 자리에 있을 때 그 성장 효과를 거두어서 보란 듯이 과시해야 하기 때문에 묵묵히 인재를 양성한다는 것은 자기의 자리마저 위태롭게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시도도 하지 않은 채로 포기하는 그런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 서글프다. 하지만 의지만 있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뮤지컬 창작과를 개설하기 위해 준비되어야 할 커리큘럼과 교수진 등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고 필요한 시설이나, 자료 등은 무엇인지에 대한 것은 뮤지컬 창작에 관련된 이들의 논의를 통해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는 단계이다.    


뮤지컬 창작과를 대학원 과정으로 개설해야 한다는 것과 함께 한국 뮤지컬 발전을 위해 제시하고 싶은 또 하나의 것인 독회(reading)이다. 현장에서는 독회(reading)가 사전 제작 과정으로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회가 중요한 이유는 하나의 작품이 포장되기 전에 작품이 가지고 있는 드라마와 음악의 완성도가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창작 뮤지컬 중에는 작품 자체가 가진 완성도보다는 기획력으로 포장만 요란하게 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 많다. 공연 예술은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작품들이 공연 자체가 아닌, 그 외부에서 그 작품을 홍보하고 변명하는 말로 작품성을 평가받으려 한다. 우선 대본과 음악이 좋아야 거기에 좋은 연출가도 협력을 하게 되고, 의상 디자이너, 조명 디자이너, 음악감독, 분장 디자이너, 무대 디자이너 그리고 배우들이 협력을 하게 된다. 그래야 완성도 높은 작품이 만들어진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러한 완성도 높은 작품을 제대로 홍보하는 제작에 관련된 일들을 해야 하는데 작품이 좋아야 그 일을 맡은 이들에게도 동기가 부여되는 것이다. 자신이 관련된 작품이 유치하고 한숨 나지만 먹고 사느라고 그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독회는 그래서 필요하다. 제작자에게 대본, 악보 그리고 데모 CD를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제작자에게는 독회를 통해 작품을 소개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독회란 배우들이 작품의 모든 대사와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에서 읽는다는 뜻은 노래를 부르는 것을 포함한다. (뮤지컬 작품을 소개하는데 음악 없이 가사만 읽어서는 소용이 없지 않겠는가?) 배우들은 대사와 노래를 암기할 필요가 없이 극의 진행대로 읽으면 된다. 무대 상황을 설명해야 할 때는 거기에 필요한 지시문을 누군가 읽어준다. 독회에서는 무대, 조명, 의상, 분장 등이 없기 때문에 그야말로 대본과 음악의 완성도를 확인할 수 있다. 제작자들은 독회를 보고 나서 그 작품이 제작할만한지를 직관적으로 알아챌 수 있다. 혼자서 대본과 음악을 분석하면서 끙끙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작가와 작곡가는 독회에 참석한 손님들을 통해 대본과 음악이 지닌 약점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파악하여 작품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할 수 있다. 약점이 많을수록 제작자들에게는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작업은 제작자를 만날 때까지, 아니, 만나고 나서도 이 수정 보완 작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내가 독회에 대해 얘기하면 어떤 분들은 쇼케이스로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데 위에서 내가 제안하는 독회와 요즘 한국의 뮤지컬계에서 곧잘 행해지는 쇼케이스와는 차이가 있다. 내가 제안하는 독회는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배우를 통해 다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쇼케이스는 작품 전체를 보여주지 않고 작품의 줄거리를 설명하면서 일부의 장면과 노래를 선보인다. 일부만 보여주는 그 위험성을 알고 있는가? 일부만 보고는 절대로 작품을 올바로 판단할 수 없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것은 요즘 몇몇 단체나 기업이 쇼케이스를 기반으로 하는 공모전을 열어 공모에 참여한 작품의 일부만을 보고 심사해서 순위를 매겨 상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상을 받은 작품의 종착역이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작품의 일부만 보고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다. 어떤 쇼케이스는 그다음 단계, 즉 공연으로 갈 수 있도록 지원을 하기보다는 창작인들에게 상금만을 주고 끝나는 경우도 있었다. 만일 그 돈으로 여행을 가거나 월세방 마련하는데 다 써버리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지. 작품을 쓰느라 고생한 창작인들이 고생한 만큼의 보상을 받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상금 전체가 그 개인적 보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상금 전부를 공연으로 발전시키는 데에만 지급하고 창작인 개인에게는 지급되지 않아서도 안 된다. 제안하고 싶은 것은, 전체 상금 중 일부는 창작인에게, 나머지는 제작을 위해 지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쇼케이스는 공모전을 통해 작품을 받아서 대본과 음악 심사를 해서 일부를 탈락시키고 1차 합격된 작품들에 지원금을 줘서 쇼케이스를 하게 하고는 그것들을 2차 심사해서 상을 주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그런 공모전에 나오는 작품들이 아직 제작사가 결정되지 않은, 창작인들 개인이 제출하는 작품보다 이미 제작자가 결정되어서 제작이 추진 중인 작품들이 많고 또 그런 작품들이 상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제작사가 제작비를 어떻게든 마련하려고 출품하는 작품에 상금을 주다니 이게 누구를 위한 공모전이고 쇼케이스며 이게 무슨 에너지 낭비란 말인가? 이런 행사는 소수의 스타를 탄생시키기 위해 수많은 예술가의 좌절을 담보하는 반드시 사라져야 할 행사이다. (연극계뿐 아니라 음악계, 무용계, 문학계 등에서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렇게 많은 희생양이 필요한 각종 대회를 보고 있는지.) 제작사를 찾는 창작 뮤지컬 작품들이 한데 모여 작품의 일부나 전부를 보여주면서 각각에 걸맞은 제작사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NAMT(National Alliance for Musical Theatre. http://namt.org)의 활동을 참조하면 얼마든지 건강한 모습의 우리만의 축제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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