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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일 Jan 10. 2019

제24회 - “한국 뮤지컬, 무엇을 어떻게?”(4)


 내 입장에서 한국 뮤지컬의 발전을 위해 이야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부분은 워크숍 공연과 그 워크숍 공연을 할 수 있는 워크숍 전용 극장에 대한 필요성이다.    


 독회를 몇 차례 해서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면 워크숍 공연을 하는 것이 좋다. 배우들을 통해 독회를 해보면 대본과 악보 상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점들을 만날 수 있는데, 독회는 그 작품이 무대화되기 전에 그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마찬가지로 워크숍 공연도 독회 때는 만나지 못했던 문제점을 발견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독회 때는 무시해도 되었던 고려해야 할 점들 즉, 실제 배우의 물리적인 움직임과 행동선이 만들어지면서 고려되어야 할 공간, 등퇴장이나 배우들이 의상을 갈아입은데 필요한 물리적인 시간, 장면 전환 때 걸리는 물리적인 시간을 채울 음악의 필요성 그리고 약식으로 표현되더라도 조명, 분장, 의상 등의 전체적 조화와 효과 등이 그것이다. 워크숍 공연에서 만나게 되는 이러한 해결되어야 할 점들에 대해 충분히 수정이 되고 준비가 된 후에라야 비로소 상업 공연에 들어가야 한다.    


 워크숍 공연이 모든 뮤지컬 작품의 필수적인 단계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본 공연의 관람료를 적지 않은 금액으로 책정하려고 계획한다면 그 금액에 맞는 완성도를 책임지겠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워크숍 공연 정도는 감안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국의 많은 창작 뮤지컬들이 독회와 워크숍 공연을 거치지 않고 바로 본 공연에 들어가기 때문에 많은 관객들이 실망하고 결과적으로 작품은 실패를 한다. (만일 짭짤한 수익을 거둔다 하더라도 그것이 작품의 수준을 증명한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여러 가지 요인으로 훌륭한 작품도 흥행에 실패할 수도 있고 그저 그런 작품도 흥행을 맛볼 수 있다.) 단계를 거치지 않은 작품들의 잦은 앙코르 공연에 대해 겉으로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많은 수정 보완을 했다고 홍보하지만, 그것은 이미 지난 공연에 비싼 입장권을 사서 본 사람들을 그저 실험 대상으로 쓰면서 돈까지 받았다는 것일 뿐이다. 그런 실험은 이미 워크숍에서 끝냈어야 한다. 간혹 본 공연 개막 전에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마지막으로 수정 보완할 사항들을 점검하기 위해 몇 차례의 시연(보통 프리뷰(preview)라고 하는)도 한다. 그것 역시 박수받을 만한 책임감 있는 행동이지만 워크숍 공연은 본 공연을 위한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하는 무대화 작업이라는 면에서 시연 이상의 책임감을 보여주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한국의 관객들은 참 착하다. 백화점이든, 대형 할인마트에서든, TV홈쇼핑에서든, 인터넷 쇼핑몰에서든, 집 앞 구멍가게에서든 상품에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엄청난 불만을 토해내는데도 뮤지컬 공연은 그냥 넘어가 준다. 딱히 무엇에 문제가 있는지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더라도 입장료 환불을 요구할 방법이 있는지도 잘 모를 것이다. 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을 써야 할지를 생각해보면 하자가 있는 공연을 보고도 재미있었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게 된다. 헛돈을 썼다고 고백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하니까. (뉴질랜드 태생의 심리학자 글렌 윌슨(Glenn Wilson)은 그의 책 『공연예술 심리학 』(김문환 번역, 연극과 인간, 2000)의 제5장 ‘극장에서의 사회적 과정’을 통해 입장료를 사는 것이 진지한 관심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투자이며, 입장료가 비싸면 비쌀수록 관객들이 더욱 그 투자한 만큼의 이익을 얻으려 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초대권을 받아 무료로 공연을 보는 사람보다 입장권을 사서 보는 사람이 작품에 대해 호평을 하게 되고 관객석을 채우기 위해 남발되는 초대권은 잘못일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같은 물건이라도 비싼 가격이 책정되어 있는 물건을 사서 과시욕을 충족시키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래서 교활한 기업은 고급화 전략을 쓰는 것이다.) 실망한 공연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인터넷 상의 어느 곳에 작품에 대한 지적을 하는 것 밖에는 없다. 그러나 그런 개인의 문제제기는 자본을 앞세운 작품 홍보에는 밀려 가려지곤 한다. 그리고 불만을 제기하는 것을 가장 어렵게 하는 것은 예술에는 정답이 없다는 일반적 이야기이며 제작자들은 그 점을 이용할 수 있다. 문제는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입장료가 싸지는 것은 아니라는 데에 있다.)    


 이러한 워크숍 공연을 하고자 한다면 그런 워크숍 공연을 할 수 있는 워크숍 전용 극장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뮤지컬 전용 극장 그리고 어떤 하나의 작품을 위한 그 작품의 전용 극장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전용 극장보다 더 급한 것이 워크숍 전용 극장이 아닐까 한다. 작품의 최종 목적지가 되는 공연장이 아닌 새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극장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극장을 제안한다면 수익을 가장 우선시하는 이들은 부정적인 생각을 할 것이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작품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크숍 작품은 그 자체가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워크숍 극장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작품들은 그 공연 자체에서 수익을 걷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보다 큰 무대로 가기 위해 대중들과 제작자 모두에게 검증받는 것이 목적이다. 수익을 원한다면 워크숍 극장에서 공연되는 작품들을 살펴보는 것이 워크숍을 거치지 않은 작품들을 공연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는 사실도 감안할 수 있지 않겠는가? 워크숍 공연은 본 공연으로 가기 전에 작품성과 상품성까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뮤지컬 렌트는 뉴욕 시어터 워크숍(New York Theatre Workshop) 극장을 거쳐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워크숍 극장이 생긴다면, 관객은 워크숍 극장이라는 그 공연장의 성격 때문에라도 화려한 대형 뮤지컬 작품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람료가 다른 일반 뮤지컬보다 저렴하게 책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 워크숍 극장에 가면 언제든지 젊고 신선한 창작인들과 제작자들의 새로운 작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돈을 벌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싶어 하는 작가와 작곡가가 별로 없을 것 같다면 그것은 오해이다. 그들은 그런 장이 펼쳐진다면 그동안 폭발하지 못했던 그들의 열정과 숨은 실력을 무섭도록 내보일 것이다. 그곳은 언제나 뮤지컬의 신인 작가와 작곡가의 다양한 작품이 계속 공연될 것이고 동시에 그 가운데 가능성 있는 작품의 더 큰 여정을 위한 제작자와 그 작품의 작가와 작곡가들의 만남의 장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뮤지컬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뮤지컬 창작 교육 과정, 독회, 워크숍 공연 그리고 워크숍 극장의 필요성을 이야기해보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이 공연예술에 관련된 공부 또는 일을 하고 있는 분이거나 적어도 뮤지컬에 남다른 관심이 있는 분이시라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가? 한국의 현실에서 그런 시스템은 어렵다고 할 것인가? 적어도 해답은 단순하다. 그럼 이런 제안이 가능하도록 한국의 현실을 바꾸면 된다. 독회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워크숍 공연이 가능하게 하면 된다. 그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은 당연히 어렵고 힘든 것이다. 그것은 진리이다. 그런 진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피해 갈 수 있는 것이었던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그 어떤 예술 행위가 ‘현실’에 맞는가? 문제는 현실이 아니다. 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독회를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워크숍 공연을 통해 상품화에 대한 검증을 해야 한다는 것이 현실과 거리가 있다고 외면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언제쯤 관객을 실험대상이 아닌 손님으로 모시는, 관객의 삶에 자극을 줄 수 있는 걸까? 멀리 봐야 한다. 말로만 창작 어쩌고 하면 안 된다. 실천을 해야 한다. 만일 실천하지 못한다면 실천하고 있는 이들을 응원해줘야 한다.   

 

 이 장의 산책을 멈추려고 돌이켜보니 이런 고민과 실천이 한국 뮤지컬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인간의 삶을 위해 이런 일을 하자고 하는 것 같다. 다른 나라의 뮤지컬에 경쟁하기 위해서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이런 진지한 행위가 일차적으로는 한국 뮤지컬을 위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직업은 성직이라는 것을(파렴치한 일이 아니라면) 생각해보면 이 작은 일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것이라는 것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그 어떤 일이라도 자신의 이익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지는 일이라면 성직으로 인식하고 그것에 충실해야 한다. 초라한 나에게는 뮤지컬에 관련된 일이 그럴 것이다. 또 하나, 이 장의 산책을 멈추려고 서서 나 자신을 다시 보니 나는 여전히 초라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내가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들과 함께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산책로를 넘어서 가파른 등산길이 시작되는 등산로 입구로 이끌고 와 있는 것 같아 송구스럽다. 이 장의 산책은 여기에서 멈추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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