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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일 Jan 10. 2019

제25회 - 쉬쉬병과 회복 의지 (1)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할 때가 언제이신가. 재산 목록 1호인 부모님이 사주신 자전거를 도둑맞았을 때? 공부나 운동을 나보다 잘하는 아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을 때? 불량배들에게 돈을 빼앗겼을 때? 얼떨결에 나이 많은 이성에게 입술을 빼앗겼을 때?(결과적으로 빼앗긴 것이었다는 것은 나중에 깨닫곤 하지만.) 대학에 떨어졌을 때? 애인과 이별했을 때? 사람들이 왜 의사, 판사, 변호사, 교수 같은 사람들을 무시하지 못하는지 깨달았을 때? 자신의 부모님이 그리 특별한 분들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 세상엔 태어날 때부터 더 나은 기회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 정치적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고 화가 났을 때? 돈 때문에 서러움을 맛보았을 때? 사기를 당했을 때? 아마도 우리는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될 일 때문에 상처를 경험하면서, 세상의 부정적인 면을 보면서 세상이 그렇다는 것에 대해 내가 그동안 순진하게 살아왔구나 하며 눈을 뜨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땠는가? 나는 저런 사람이 되지 않겠노라고,  나는 이 치사하고 더럽고 이기적인 세상에 물들지 않겠노라고 눈물을 흘리며 다짐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런 세상을 바꿔보기 위해서라도 강해지겠다고 이를 악물었을 수도 있다. 


 대한민국. 나이를 먹어가면서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숨 막히는 곳인지 뼈저리게 경험한다. 정치, 경제, 교육, 교통, 환경, 복지 등... 뉴스와 신문은 우리 사회가 사실은 매일 전쟁 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분야가 있기는 한 것일까라는. 사람 사는 곳은 모두 비슷하기에 다른 나라라고 모두 천국 같지는 않을 것이다. 흔히 선진국이라는 나라라도 모든 것이 잘 되어 있지는 않다. 유럽에 가면 가전제품 하나 고치려고 수리를 의뢰하면 며칠 뒤에나 방문할 수 있다고 하고 미국도 무슨 서류 하나 받으려면 며칠 기다리라고 한다. 빠른 것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미칠 노릇이다. (아마 외국에 자주 드나드는 분들은 외국과 우리나라가 각각 무엇에 앞서고 있고 무엇에 뒤쳐져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나라 가서 무슨 장사하면 돈 될 거라는, 우리나라에서는 무엇을 들여오면 되겠다는 생각도 하실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외국에서 무엇을 들여오려고 하는지 재빠르게 움직이지만 우리가 다른 나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을 좀처럼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안전에 관한 사항과 같은 것들이나 공정한 경쟁을 통해 기회를 잡는 것들.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까다로운 그들의 기준에 대해 우리는 그런 거 다 지키고 어떻게 장사하냐고 한다. 그러다가 큰 사고가 난다.     


 내가 너무 우리나라를 깎아내리는 것일까?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자랑할 만한 것들도 많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분야의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는 그 분야의 문제가 있지 않은가? 전문가들은 늘 그렇게 말한다. “흔히 그렇게들 알고 있는데, 거기에 사실은...” 거의 모든 분야에 도덕적인, 법률적인, 관례적인 문제점이 있다. 그런데 그런 우리 사회의 각각의 분야의 문제점들은 그 분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 각각의 분야에 속한 이들 중 뜻이 있는 이들의 내부적인 노력을 통해 그 분야가 발전되고 있고 그런 노력들이 합쳐져서 우리 사회 전체가 발전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분야에 걸쳐 있는 우리 사회의 병이 있는 것 같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상에 대해 알게 되면서도 순응하게 되는 병. 그 병을 치유하면 모든 분야가 눈부신 발전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병이란, 어떤 문제에 대해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쉬쉬하는 병이다. 그 병을 쉬쉬병이라고 이름 붙여본다.     


 자신이 관계하고 있는 분야에 문제점이 있는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쉬쉬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자신이 말해봐야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패배주의? 자신이 속한 조직 사회에서 눈 밖에 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겠냐는, 자신도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겸손함 내지는 자격지심? 굳이 문제를 일으켜서 골머리 앓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 이해는 된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다. 그리고 역사는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그런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사건의 인과관계이다. 과거의 일이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 칼로 자르듯이 잘라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내가 사는 세상은 어제 내가 만들어낸 세상이기도 하다.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그 자체가 도전이다. 그래서 힘들다. 아프다. 그래도 말해야 한다. 내일 내가 사는 세상은 내가 오늘 만들어낸 세상이 될 테니까 말이다.    


 뮤지컬계. 우리 사회의 아주 작은 부분. 예술 분야에 속해 있고 공연예술 분야에 속해 있는. 이 뮤지컬계도 다른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문제점이 있다. 그리고 역시나 쉬쉬병에 걸려 있다. 뮤지컬에 대한 힘겨운 산책을 통해 많은 말을 쏟아냈지만 그래도 다 못한 이야기를 앞으로의 과제물로 남기듯이 늘어놓는 정리운동을 해보고자 한다. 세상의 부정적인 면을 보며 깨달았던 세상이 그렇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저런 사람이 되지 않겠노라고, 나는 이 치사하고 더럽고 이기적인 세상에 물들지 않겠노라고 했던 때를 기억해보시라.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에세이를 마무리한다면, 해야 할 말을 하지 않고 나 역시 살아지는 대로 사는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여러분과 함께 두고두고 생각해볼거리들을 나누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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