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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일 Feb 20. 2019

제4회 - 준비 기간 (2)

1997년 12월 17일 토요일 : 플로리다. 하지만 내 마음은 뉴욕에

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 ‘국제통화기금’이라고 하는 국제금융기구. 국제적으로 돈을 모아놓았다가 국제적으로 돈 문제가 생기면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해결하는 곳이다.  

    

1997년 12월 3일은 대한민국이 IMF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날이다. IMF로부터 빌린 돈을 다 갚아서 그 체제를 벗어난 때가 2001년 8월 23일이었다. 내가 NYU에 다닌 해가 1999년 9월부터 2001년 5월까지니까 나의 유학 생활은 그 우리나라가 IMF 관리 체제 아래에 놓였던 그 처절했던 시기 안에 속해있었다. 그 처절했던 시기에 유학이라니. 돌이켜보면 그 당시의 나는  너무나 철없고, 아무것도 모르고, 꿈만 먹고살던 청년이었다. IMF 구제금융 양해각서를 체결한 날은 1997년 말이었지만 그동안 서서히 쌓여온 상처의 고름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한보철강이 부도가 났던 그해 1월 23일부터였다. 그날 나는 플로리다의 올랜도에 있었다.     

1997년 1월 17일. 토요일. 나는 플로리다주의 올랜도로 가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인천공항은 있지도 않았던 때이다. (인천공항은 2001년 3월 29일 개항했다.) 올랜도에는 누나네 식구들이 살고 있었다. 그곳에 며칠 있다가 뉴욕에 가서 또 며칠 있다가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아틀랜타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시카고에서 잠시 쉬었다가 마침내 올랜도. 도착한 날도 여전히 1월 17일이었다. 

여권 속 미국 비자가 있는 쪽에 찍힌 미국 입국 날짜 도장.

플로리다는 미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 살고 싶어 하는 곳이라고 한다. 에어컨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주로 미국의 겨울 휴가지로 인기가 있다가 에어컨이 발명된 이후로는 천국이 된 곳이다. 눈부신 햇빛, 맑은 바닷물, 호핑, 낚시, 골프... 하지만 누나네 식구들은 그런 삶을 마냥 즐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조카 하늘이를 테니스 선수로 키우려고 그곳에 가족들이 왔기 때문에 모든 것은 하늘이의 테니스 훈련과 대회 참가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도착하자마자 그날 밤 다른 도시로 가서 모텔에서 잠을 잤다. 가족 모두가 하늘이의 테니스 대회에 같이 갔기 때문이다. (1984년생인 조카 하늘이는 이때 겨우 만 열세 살이었다. 지금은 두 아이의 아빠인 하늘이는 지금도 미국에서 테니스 코치로 일하고 있는데  테니스 관련 책도 쓰고, 용품도 개발하고, SNS에 테니스 레슨 동영상을 올리기도 하면서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간판 테니스 선수 정현 선수를 가르치기도 했다.) 그다음 날에는 또 다른 모텔로 이동했다. 3일째 되는 1월 20일이 되어서야 다른 교포분의 차를 타고 누나 네로 갔다. 하늘이는 자기 아빠와 엄마하고 남은 대회 일정을 소화하고 그다음 날 집으로 돌아왔다.     

 

누나네 집에서 그곳에서 일주일 정도를 지냈다. 자기 차 없이 플로리다에 머문다는 것. 이건 뭐 지하철이 있나, 버스가 있나, 주위에 걸어서 돌아다닐만한 상가가 있나... 그저 종일 집에서 TV나 보면서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일주일쯤 있으면서 빨리 뉴욕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플로리다 생활이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나는 그저 뉴욕의 브로드웨이를 걷고 싶었다. 뉴욕에 있는 김 YB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악을 전공한 그 형은 우리 교회의 성가대 지휘를 하다가 뉴욕으로 와서 유학 생활을 이제 막 시작하고 있었다. 반가워하면서 뉴욕에 오면 다른 곳에 가지 말고 꼭 자기 집으로 와서 지내란다. 1월 26일 일요일에 공항에 가서 그다음 날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1997년 1월 27일 월요일. 나는 드디어 말로만 듣던, 사진, TV, 영화로만 본 뉴욕이라는 곳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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