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 병원에서 내게 장애인 등록심사를 권유했다. 검사 후 심사결과에 따라 장애인 등록증이 발급되면, 다양한 부분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사실, 뇌수술을 진행했던 대학 병원에서도 내가 편마비가 시작된 후 장애인 등록 심사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그날, 엄마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너는 금방 좋아질 거니까, 굳이 장애인 등록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왼발에 이어 왼손에도 편마비가 시작되었다.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이는 뇌부종 또한 쉽게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사실 어쩌다 내가 장애인 등록을 하겠다고 결심했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이 또한 어쩌다 보니, 얼떨결에 검사와 신청을 같이 하게 된 것 같다.
행정복지센터에 방문해 병원에서 받아 온 각종 자료와 서류를 제출했다. 병원에서 만난 다른 간병인 분께 "이게 한 번에 받아 주지를 않아요. 계속 방문해서 내라고 하는 거 준비해서 내고. 또 내고. 왔다 갔다 많이 했어요."라는 말을 들었기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정말 쉽지 않았다.
행정복지센터에서 수시로 내게 연락을 했고, 그때마다 병원에서 필요한 자료를 받아 다시 제출했다. 엄마에게 나는 그래도 인지능력도 괜찮고, 체력도 괜찮지만 몸도 가누기 힘든 장애인들은 등록증 받기 여간 어렵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날은 약한 비가 조금씩 내리는 날이었다. 행정복지센터에서 장애인 등록증이 나왔으니 찾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생소하게 생긴 장애인 복지카드. 거기엔 어색하게 웃는 내 사진과 함께 장애명(뇌병변장애 경증)이라는 명칭이 쓰여 있었다.
사실 경증은 낮은 단계라, 뭐 그다지 큰 혜택은 없었다. 제일 기대했던 것은 장애인 주차 자리에 주차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는데 경증 장애는 그 또한 어렵다고 했다. 휠체어를 타지 않아서 그런 걸까 싶었지만, 절뚝 일지언정 걸을 수는 있는 나였기에 '그래 뭐, 합리적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국가에서 나를 '장애인'이라고 규정하였지만 나의 삶은 딱히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원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가끔 남편과 여행을 가거나 공연을 볼 때 소소한 할인혜택이 있는 정도랄까. 특히 나는 공연을 보는 것을 즐기는 편인데, 정말 보고 싶었던 공연이 경증장애도 50%의 큰 할인 혜택이 있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예매를 진행한 적도 있다.
다만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갈 때는, 할인 혜택이 있어도 장애인 할인을 받지 않았다. 일반 성인 요금과 큰 차이가 없기도 했지만, 내가 복지카드를 창구에 내밀 때 엄마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행정복지센터에서 복지카드를 손에 들고 오는 날, 엄마는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웃으며 "좀 슬프다."라고 이야기했다. 슬프다는 단어가 왔다 갔다 움직이는 와이퍼의 소음에 묻혀 더욱 서럽게 느껴졌다.
어느 날 아빠가 꿈을 꾸었다며 이야기했다. 내가 예전처럼 건강한 두 발로 걸으며 '아빠' 하고 달려오는 꿈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아빠가 꿈이 잘 들어맞으니 곧 그렇게 될 거라고 했다. 하지만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아빠의 꿈이 현실이 되는 일은 없었다.
발병 초기에는 내 꿈에서도 나는 자유롭게 걷고 뛰고 움직였었다. 하지만 최근의 꿈에서 내가 '아 나가야 해.'라고 하며 엄청 복잡하고 거추장스러운 보조기를 발에 칭칭 감는 것이 아닌가. 이제는 꿈속에서도 나는 장애인인가 보다 하며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남편은 '개꿈이네.' 딱 한마디로 내 꿈에 대한 총평을 내렸지만, 묘하게 그 꿈은 기억에 남는다. 평상시 신는 보조기보다도 복잡하고 얽혀 있던 꿈속의 보조기. 그 보조기가 꼭 지금의 내 마음과 상황 같아서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어떤 날은 '손 만이라도 돌아왔으면 좋겠어.'라고 했다가 어떤 날은 '아니 발.'이라고 정정한다. 발과 손, 둘 다 좋아지는 기대는 지금의 내게는 너무 과한 기적과 기대 같다.
뭐, 큰 욕심만 내지 않는다면 예전에 비해 두통도 심하지 않고 편안하게 잠자리에 드는 매일의 일상이 나쁘지는 않다. 하고 싶은 것은 불편해도 어찌어찌할 수 있으니까. 밥을 먹고, 혼자 씻고, 한 손이지만 빠르게 타자를 치고, 청소를 한다. 티브이와 웹툰 등 놀거리도 풍족하다. 하지만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그 마음이 큰 우울로 다가와 어김없이 눈물을 고이게 만든다. 잘 지내다가도 몇 번씩 그런 주기가 온다.
'하고 싶은 것이 많다.' '가고 싶은 곳이 많다.' 그런 마음과 '지금도 괜찮다.'는 마음이 계속 싸운다. 복지카드를 손에 들고 돌아온 그날의 기분처럼. 아직은 내가 새로 경험해야 할 감정들이 남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