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한 여자분이 길을 걷는데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말도 없이 그분을 밀치고 지나갔다는 것이다. 글을 읽으면 이건 그 장애인이 100% 잘못한 일이 맞다. 길을 걷던 그녀는 괜한 봉변을 당한 것이고, 하필 자신을 밀친 사람이 장애인이라 더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나 역시 그녀의 당혹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례하고 경우 없네!' 하고. 하지만 이후, 그 밑으로 쏟아지는 댓글에 시선이 고정되어 정신이 아찔해졌다.
댓글에는 '장애인들 중에서 피해의식으로 가득한 사람이 많다.' '장애인이라고 다 배려해 줄 필요는 없다.' '장애인이 지나가면 일부러 앞지르고 문도 안 잡아준다.' 이 정도는 그래, 그럴 수 있지 싶었다. 그러나 '원래 심보 못된 사람이 벌 받아서 장애인 되는 거임. 인과응보.'라는 댓글에는 차마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최근 우리 사회가 혐오의 시대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세상이 마냥 따뜻한 곳이 아님을 안다. 그중에서 장애인에 대한 혐오도 상당하다. 하지만 정말로 나를 포함한 이 세상의 장애인들은 못됐고, 그래서 벌을 받는 걸까. 털어서 먼지 하나 나오지 않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내가 꽤 성실하고 바르게 살았음을 자부한다. 적어도 나는 손해를 보면 봤지, 남을 짓밟고 위로 올라가려는 악인은 아니었다. 아이와 동물을 사랑했고, 노인을 공경했으며, 나를 둘러싼 공기와 자연, 그리고 계절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도, 지금은 장애인이다. 지금 나는 나조차 알 수 없는 죄로 인해 벌을 받고 있는 걸까.
그 댓글을 읽고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았다. 나는 모르지만, 정말로 나를 미워하고 끔찍하게 싫어했던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나의 행복이 누군가에게는 불행이 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설령 그랬다고 해도 한 번은 묻고 싶다. 그러면 이제는 만족, 하냐고. 충분한 벌이 되었냐고 말이다.
인과응보로 내가 장애인이 되었다면, 세상의 수많은 악인들은? 감옥에서 썩어갈지언정 팔다리 멀쩡하게 살아있지 않는가. 어떤 이들은 죄에 비해 너무나 가벼운 형벌을 받지 않는가. 선택적 인과응보라면 이를 정하는 것은 누구인가. 정말이지, 신은 죽었다는 한 철학자의 말이 이해가 된다.
굳이 배려해 주지 않아도 된다. 장애인이라고 무조건적인 배려를 바라지 않는다. 친구가 될 필요도 없다. 다만, 혐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로, 그 존재를 인정해 주면 된다. 단지 그뿐이다. 존재만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꽤나 씁쓸하다.
인과응보라는 댓글을 쓴 사람에게 '너도 당해봐라.' 하고 저주를 내리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건 정말 고통스러우니까. 꼭 같은 것을 경험해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중, 고등학생 시절에 장애이해교육을 들으면, 강사님께서는 우리가 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장애인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하는지에 대해 연설하셨다. 우리의 친구, 지인들 중에서 장애인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너도 장애인이 될 수도 있어.'라고 말하는 강사는 없었다. 그 자체로 사춘기 청소년들에게는 자극이 될뿐더러, 꼭 겁을 주는 것 같기 때문에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알아야 한다. 장애란 누군가에 의해 벌을 받는 게 아니라고. 당신도, 가족도, 친구도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벌도, 저주 같은 것도 아니라고 말이다. 어쩌면 이는 우리의 주변에서 장애인을 만날 일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주치지 않기에, 서로 대화를 나눌 일이 없기에 서로를 생각할 기회도 사라진다.
나 역시 남편과 동네 한 바퀴를 걷거나, 여행을 할 때 장애인을 본 적이 없다. 나름 전국 여기저기를 쏘다니지만, 일상생활에서 장애인을 마주하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내가 쓰러지고 긴 병원 생활 후 재활을 시작할 때. 나는 세상에 이렇게나 아픈 사람들이 많구나를 처음 느꼈다. 병원에는 갖은 이유로 아픈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느꼈다. 거리에 장애인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그들의 활동범위가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병원과 집을 오가는 생활을 반복하는 그들을 일반인이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내가 장애인이 될지는 정말 몰랐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장애를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오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장애인으로서 과한 배려나 지원을 바라지 않는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불편하게 하고 싶지도 않다.
정상인 중에서도 나쁜 사람과 착한 사람이 있듯이 장애인들 중에서도 나쁜 사람과 착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이라는 타이틀 이전에 그들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장애인들은 원래'가 아닌 '저 사람이 원래'라고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쁜 범죄자 한 명이 모든 인간을 대변하지 않듯, 그렇게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벌을 받는 게 아니다. 그냥, 이렇게 된 것뿐. 나 역시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기에, 장애인 가족을 둔 분들이나, 갑자기 장애를 얻게 된 분들의 죄책감과 절망감을 어느 정도 짐작한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당신은 벌을 받는 게 아니라고. 장애는 당신이 나쁜 사람이라는 증거도 아니라고. 그저, 우리에게는 그런 일이 있었을 뿐인 것이라고. 그러니 죄책감은 잠시 내려두고 거리를 걷자고.
사람으로서, 그래, 한 사람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