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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 샤베트 Nov 16. 2020

[아쿠다마 드라이브]

뻔하지만 성실하게 재현된 장르의 매력들

이게 신칸센이야 설국열차야

 

   수많은 연기로 인해 삭막해진 2020년 애니메이션 시장도 3분기를 시작으로 연기됐던 작품들이 하나 둘 공개되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연기된 작품과 연기를 피한 작품들이 한꺼번에 몰린 이번 4분기는 특히나 볼만한 작품들이 많은데, 어느 예고도 없이 갑자기 튀어나온 [이누야사]의 정식 후속작 [반요 야샤히메]라던지, 연기에 연기를 거듭해 겨우 공개된 [던만추 3기], [쓰르라미 울 적에]의 후속이자 리메이크인 [쓰르라미 울 적에 업], 마에다 준과 P.A.Works의 또 하나의 합작품 [신이 된 날], 네이버x크런치롤 프로젝트의 마지막 타자인 [노블레스] 등등 쟁쟁한 4분기 신작 애니 중 다크호스라고 불리는 한 애니가 있다.




[단간론파]와 [페르소나]의 후예



    [나루토 질풍전], [오소마츠 상] 리메이크 등으로 한국에도 친숙한 스튜디오 피에로에서 제작한 [아쿠다마 드라이브]는 2020년 4분기의 다크호스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작을 보여주고 있다. 제작진의 면면을 조금 살펴보자면, [단간론파] 시리즈의 제작진이 스토리 원안과 캐릭터 원안에 참여하고, [페르소나 4]와 [키노의 여행](2017)의 감독이 참여했고, 성우진 또한 [단간론파]와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제작진이 이렇다 보니 [아쿠다마 드라이브]는 [페르소나] 시리즈와 [단간론파]의 느낌을 꽤 많이 계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나 캐릭터 디자인부터 비범한 조연들 사이에 우연히 끼게 된 ‘평범’한 주인공의 구도, 중간중간 등장하는 인물 소개 시퀀스나 배경전환 이펙트 등은 두 시리즈의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이 두 시리즈의 팬이라면 더 이상의 설명 없이도 당장에 챙겨볼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적인 매력이 가득



    그러나 [아쿠다마 드라이브]의 진정한 매력은 [페르소나]와 [단간론파]의 어떤 계승된 특징들에서 오지 않는다. 꽤나 큰 팬덤을 지닌 두 시리즈의 팬들을 새로운 세계에 포섭하면서도 고유한 매력을 어필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던 [아쿠다마 드라이브]는, 시의적절한 사이버펑크 장르와 90년대 서구권 고전영화들의 오마주를 통해 차별화를 시도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계에서 고전 영화들의 오마주를 시도한 경우는 종종 있었다. 당장에 [카구야 님은 고백 받고 싶어] 1기의 오프닝은 대놓고 007 시리즈의 오프닝을 오마주 했으니 말이다. 다만 [아쿠다마 드라이브]의 경우, 이 시도는 좀 더 본격적이고 노골적이라 할 수 있다. 


    (5화까지 나온 시점에 쓴 글임을 미리 밝힌다)현재까지 공개 된 [아쿠다마 드라이브]의 각 회차 제목은 각각 [세븐], [저수지의 개들], [미션 임파서블], [스피드], [데드 맨 워킹]이다. 각 회차의 제목은 단순히 폼으로만 지어진 것이 아닌, 해당 화의 스토리라인을 설명하는 중요한 복선으로 작용한다. 


    각기 다른 죄목([세븐])으로 (해당 세계관의 범죄자를 일컫는)‘아쿠다마’에 속하게 된 주연들을 소개하고, 범죄자들끼리 서로의 목적을 위해 작당을 꾸미며 배신과 협력을 반복하며([저수지의 개들]), 이들이 그 누구도 달성하지 못했던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팀플레이를 기어코 성공해내고([미션 임파서블]), 멈추지 않는 운송수단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스피드]) 사형수들의(데드 맨 워킹) 내용은 필연적으로 제목으로 차용된 90년대 영화의 오마주를 내포할 수밖에 없고, 이는 [아쿠다마 드라이브]의 가장 큰 차별화 포인트로 작용한다.

회차의 제목에서 영향을 받은 스토리라인 뿐만 아니라, [아쿠다마 드라이브]는 근래 나온 그 어떤 일본 애니메이션보다도 ‘영화’스럽다고 할 수 있겠다.


    [007 스카이폴]의 상하이 타워 시퀀스를 오마주한 2화의 싸움 시퀀스는 물론, [미션 임파서블] 특유의 연락이 두절된 떨어진 장소들에서 각자의 장기를 활용해 팀플레이를 성공시키는 엘리베이터 시퀀스는 하이스트 장르의 매력이 고스란히 살아있다.(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운반책의 오토바이 액션은 애니메이션의 그것보다도 [분노의 질주]의 연출에 훨씬 가깝다) 그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배경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여러 사이버펑크 장르 중에서도 [아키라]와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의 느낌을 가장 많이 반영하고 있다. TV 애니메이션임에도 ‘미장센’이 주 매력으로 작용하는 흔치 않은 케이스라 할 수 있겠다. 어쩌면 [아쿠다마 드라이브]는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팬층보다 일반적인 넷플릭스 시청자 층에 훨씬 더 적합한 애니메이션일지도 모르겠다.




굳이 차별화를 위해 무리할 필요가 없다



    [아쿠다마 드라이브]의 캐릭터나, 세계관 설정은 기존의 사이버펑크/하이스트/군상극 장르의 클리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단간론파]의 캐릭터 디자인과도 겹쳐보이는 순간까지 있어, 어느 정도 예상가능한 범주 내에서 스토리가 진행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쿠다마 드라이브]는 복선을 깔고 이를 회수하는 방식에 있어 큰 흠을 보이지 않으며, 하이스트 장르의 미션 성공 순간의 쾌감을 딱히 놓치는 것도 아니며, 캐릭터가 클리셰 범벅이라해서 캐릭터마다의 매력을 딱히 놓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장르 공식에 충실하게 모든 것을 착실하게 쌓아 올릴 뿐이다.  장르적인 매력 뿐만 아니라, 아쿠다마 각각의 특색을 살린 싸움 방식과 이들에 대항하는 경찰청 처형과의 액션은 여러 매력을 잘 살려 놓았으며, 6화에서는 심지어 90년대 액션영화의 클리셰 그 자체인 빗속에서의 싸움까지도 충실하게 옮겨낸다. 


    이 정도로 성실하게 장르의 매력을 재현해낸다면, 굳이 ‘신선하고’ ‘남다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평결



    아직 완결이 난 시리즈가 아니기에 모든 애니메이션이 ‘달링 인 더 프랑키스’의 그 길을 걸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항상 염두에 둬야 하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공개된 부분만 놓고 봤을 때 [아쿠다마 드라이브]가 보여준 모습은 매우 긍정적이다. [사이버펑크 2077]의 끊임없는 출시 연기에 지친 사람들에겐 제대로 된 사이버펑크의 기운을, 영화 팬들에겐 (지금은 고전이라 부를 만한)90년대 영화의 향수를, [단간론파]와 [페르소나] 팬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익숙함을, 그리고 수많은 익숙한 소재와 전개에 지친 애니메이션 시청자들에겐 신선함을 가져올 이번 분기의 [아쿠다마 드라이브]는 놓치면 아까울 작품일 것이다.









사진은 전부 공식 예고편의 캡쳐이거나 홍보용으로 배포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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