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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베디히 Feb 17. 2022

#2. 갑자기 한 달을 더 기다리라고?

소통의 오류

구매한 통에 사용한 주사기를 모아서 연락하면 수거해서 처리해주는 서비스

남편이 건넨 얘기를 이렇게 옮겨본다. 


"이번 생리주기에 시술을 시작하기 전에 OOO센터에 가셔서 서류 서명 등을 하셨어야 했는데, 안 다녀오셨네요. 그래서 이번 주기에는 못하시고 다음 생리주기에 다시 시작하셔야 됩니다. 오늘 과배란주사 시작하지 마세요." 


...


"뭐? 이번 달에 못한다고? 쌩으로 한 달을 더 기다리라고?" 

왓더... 뭐 이런 경우가... 




그러했다. 이전 글에도 적었듯이 난임클리닉과 실제 시험관시술을 하는 센터가 구분되어 있었고, 이번 생리주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 센터에 방문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물론 의사선생님께 들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 가야하는지에 대해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았다는 것. 병원의 입장도 물론 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매우 불쾌했다. 나는 당연히 과배란주사 다 맞고 난자채취에 들어가기 전에 그 센터에 언제 가면 된다고 알려주겠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보통 한 곳의 병원에서 시험관 시술의 시작부터 끝을 모두 진행하기 때문에 이번 일은 아마도 한국과 다른 독일의 병원시스템에서 온 오류였을 수도 있고, 나도 남편도 처음이었기에 잘 몰라서 였을 수도 있고, 난임클리닉을 '너무' 믿어서 였을 수도 있고, 영어로 소통하는 과정에서의 오류였을 수도 있다. 물론 담당 선생님은 친절하고 좋은 분이었고 영어도 물론 잘 하셨다. (난임클리닉을 찾을 때의 조건 중 하나가 의사선생님이 영어로 소통하는데 문제가 없는 분인가 하는 것이었다.) 무척 꼼꼼한 사람이라고 나 자신을 생각해 왔지만 이 때만큼은 내가 독일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왠지 독일어를 잘했다면 이런 소통의 오류가 없었을 것 같았다.




다 지난 이야기이지만,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이 난임클리닉에는 담당 의사선생님 한 분과 2~3명 정도의 직원분들이 있었는데 독일 병원 시스템을 잘 모르니 이 분들이 우리의 표현으로 하면 간호사인지, 코디네이터인지 그 역할을 잘 알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눈치코치로 보니 가장 나이도 많아보이고 경력이 많아보이는 한 분이 다음 방문 일정을 잡거나 하는 일을 주로 담당하는 것 같았고, 다른 분들은 걸려오는 전화를 받거나 그 외 사무적인 일처리를 하거나, 때로는 채혈도 해주셨다. 


규모가 엄청나게 큰 것도 아니고 대기자가 많은 것도 아니고 클리닉에는 항상 시간예약을 하고 방문하기 때문에 내가 도착하면 누구인지 알 것 같은데, 초기에 몇 번 방문했을 때에는 아무 얘기도 없더니, 그 날은 내가 도착해서 코트를 벗고 대기실에 앉아 있으니 잠시 후에 가장 경력이 많아 보이는 그 직원분이 나를 투명유리벽으로 되어 있는 공간인 상담실로 부르는 것이었다. 


"문 좀 닫아주실래요?" 

"아, 네" 

(문을 닫고, 상담테이블을 마주하고 의자에 앉으니)

"도착하시면 오셨는지 저한테 얘기해주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제가 오셨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뭐?'

내가 들어올 때 눈 마주치고 인사도 하구선 무슨 말인가. 

그 동안 왔을 때는 아무말도 없더니 오늘은 왜 불러서 고자세인가. 


사실 웃으면서 말을 했으면 내가 이 정도로 불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직원의 표정과 말투가 나는 갑, 너는 을 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손님이 왕이다 뭐 이런 말을 독일에서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한국과 같은 친절한 서비스를 바라는 것 도 아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태도는 갖출 수 있는 것 아닌가. 

다소 어눌한 영어로 말해서 뉘앙스의 차이로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인가. 


아무튼 짧은 그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갔지만 그냥 알겠다고 다음에 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상담실을 나왔다. 그리고 실제로 그 다음번에 갔을 때는 일부러 그 사람 앞에 가서 빤히 보면서 나 누구(주로 성을 말한다) 왔다고. 확인했느냐고. 하는 제스츄어를 취했다. 유치하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원하는 걸 해주마 하고. 




혹시라도 독일에서 시험관시술을 계획하고 있다면 난임클리닉과 실제 난자채취, 배아이식을 하는 센터를 각각 방문해야 되는 상황을 마주하기 보다는 우리나라 난임센터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한 곳에서 진행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하기를 권하고 싶다. 나중에 알고보니 OOO 센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시험관시술을 한 곳에서 진행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런 해프닝이 있은 후 우리 부부는 OOO 센터에 전화를 했고, 예약을 최대한 빠르게 잡고 방문하여 그 곳의 담당선생님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듣고 수북한 서류를 받아들고 와서 남편과 확인한 후 서명하여 제출하는 작업을 완료했다. 


그리고, 한 달을 기다려서 그 다음 생리가 시작하는 날 다시 전화를 해서 다음날 예약을 잡고 드디어 1차 시험관시술 일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과배란주사를 맞으면서 그 기간 중에 초음파 진료를 몇 번 보며 자라고 있는 난포의 크기, 개수 등을 체크하고 시기를 보다가 드디어 난자채취 일정이 잡혔고 그 날 OOO 센터를 방문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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