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Tommy John Surgery – 피와 땀과 눈물… 그리고 도박
[야구라는 이름의 인생 – 8. Tommy John Surgery – 피와 땀과 눈물… 그리고 도박]
보통 사람들이 야구공을 던지면 시속 100킬로를 넘기기 힘들다고 한다. 투구폼을 익히고, 열심히 연습을 하면 구속(球速)의 증가가 있겠지만, 130킬로를 넘기는 공을 던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야구를 잘하는, 야구의 신(神)들이 모여있는 메이저리그에는 150킬로, 아니 심지어는 160킬로에 육박하는 공을 뿌리는 선수들도 있다. 불같이 빠른 공을 뿌린다고 해서 fireballer라고 불리우는 이런 강속구 투수들은, 인간의 반응한계를 뛰어넘는 빠른 공을 무기로, 수많은 타자들을, 마치 로키산맥에서 거대한 도끼로 벌목하듯 쓰러뜨린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보는 이의 시력을 의심케 하는 변화구까지 뿌려대는 메이저리그의 fireballer들에게는 그러나,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처럼 어느 순간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아픔이 기다리고 있다.
Tommy John Surgery
Tommy John이라는 투수가 처음으로 수술받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외과수술이다. 인체의 한계를 극한까지 끌어내며 fireball을 뿌리는 강속구 투수들은 그 대가로 팔꿈치의 인대가 많이 손상되며, 급기야 끊어지기까지 한다. 과거에는 투수에게 있어 팔꿈치 인대의 손상이 사실상 사형선고였으나, 의술(醫術)의 발달로, 공을 던지지 않는 팔이나, 최근에는 반대쪽 무릎에서 인대의 일부를 절취, 손상된 부위에 접합시키는 수술이 등장했고, 오늘날 많은 투수들이 이 같은 수술로 투수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 수술은 말처럼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다.
2003년 월드시리즈 우승팀 플로리다는 우완 정통파 영건 3인방으로 유명하다. 이 가운데, A. J. Burnett은 시원시원한 투구폼과 100MPH(약 161Km/h)에 육박하는 fireball이 트레이드 마크인 영건 3인방의 선두주자이며, 01년에는 no-hitter game을, 02년에는 리그 최다 완봉승을 거둔, 77년생의 장래가 촉망되는 투수이다. 그러나, 그는 정작 소속팀이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을 때,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03년 시즌 초반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즉 Tommy John Surgery를 받으면서 시즌을 접었기 때문이다.
Tommy John Surgery는 시술 이후 약 12~18개월의 재활기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Burnett의 경우 정상적으로 재활에 성공한다고 해도 04년도 후반기에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재활성공률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실패할 확률이 존재하며, 성공한다고 해도 기나긴 인고(忍苦)의 시간을 그 대가로 바쳐야만 한다. 마운드에서 날카로운 눈매와 더 날카로운 공으로 타자들을 벌목하던 Burnett이 덕아웃에 앉아 응원단장 역할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씁쓸함을 느낀 것은 단지 필자뿐일까?
하지만, 이런 Tommy John Surgery의 시련과 재활의 고통은 비단 야구에만 존재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네 사람살이는 이보다 더 큰 시련이 존재하며 더 쓰라린 인고(忍苦)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특히나 이렇게 큰 시련은, 마치 fireballer가 팔꿈치를 쓰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자신이 장기로 삼는 부분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경영에 실패한 기업가, 귀머거리가 된 음악가, 후각을 잃어버린 조향사(調香師 : 향수의 향기를 만드는 사람) 등이 전형적인 케이스이며, 자살하는 사람의 상당수가 이와 같이 자신이 장기로 삼는 분야에서 시련을 당한 사람이라고 하니, 그 시련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메이저리거의 삶이 길게 잡아 20년이라고 할 때, 그 가운데서 재활기간 18개월은 결코 짧은 시간일 수 없듯이, 우리네 사람살이에서도 이 같은 인고(忍苦)의 시간은 대부분 그 끝을 예측할 수 없거나, 있다고 해도 상당히 길다. 게다가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도박이며, 또한 그 도박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절박한 게임이 아닐 수 없다.
한가지 더 주목할 것은, Tommy John Surgery를 딛고 성공적으로 재기를 한 선수들의 공통점으로, 속구(速球: fastball)의 구속(球速)이 증가한다는 점이다. 이미 손상된 인대로도 빠른 공을 뿌려왔던 선수이기에, 건강한 새로운 인대로는 더 빠른 공을 뿌릴 수 있기 때문. 수술에서 복귀한 후 놀라운 활약을 보여준 Jason Schmidt가 그랬고, John Smoltz와 Kerry Wood 등 재활이라는 기나긴 인고(忍苦)의 터널을 뚫고 나온 선수들은, 그 대가로 전보다 더 엄청난 fireball을 뿌리고 있다. 우리네 사람살이도, 시련과 역경을 딛고 재기에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빛나고 가슴 뭉클하다. 마치 진주조개가 기나긴 아픔을 삭히는 동안 그 안에서는 찬란한 진주가 만들어지듯…….
2003년 9월의 어느 날. Miami Herald紙의 스포츠 섹션 한 귀퉁이에 전년도까지 플로리다 말린스의 에이스였던 A. J. Burnett의 소식이 조그맣게 실려있었다. 수술 이후 처음으로 가벼운 토스(toss)를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팀원들이 97년 이후 첫 포스트시즌 진출의 희망을 안고, 모두 상기되어 있는 상황이지만, 마운드위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그 시절의 영광을 뒤로 하고, 조용히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에서, 필자는 묘한 동질감과 가슴 시린 통증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야구라는 이름의 인생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