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가을 2

추억이 되어버린 그 계절

by 리븐제이

평일 수업이 끝나면 가까운 코벤트가든에 들렀다.

곧 겨울이 오고 크리스마스 시즌임을 알려주듯 곳곳에 반짝이는 조명들은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어느덧 6주의 시간이 흘렀고 수업의 마지막 날 금요일이었다.

합격 유무에 따라 디자이너가 되느냐 마느냐가 걸린 날이었다.

초조하고 긴장되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동안 연습했었던 것들을 마음껏 펼치고 마침내 나는 'DISTINCTION'이라고 적힌 DIPLOMA를

내 품에 안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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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8주 과정 중 6주 안에 합격을 하지 못하면 남은 2주 동안 또 시험을 치르게 되는 과정이었는데

나는 디플로마를 받음으로써 남은 2주의 시간이 자유로워졌다.

이 기쁨을 가족들에게도 알리고 일터에도 알리고 싶었는데 함께 했던 친구들은 합격을 하지 못해

혼자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불편한 마음들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혼자 합격했다는 생각에 친구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눈치를 보는 나를 발견했다.

사실 마음껏 기뻐하고 서로 축하해 주는 모습들을 상상했기에 더 편치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자축하는 나의 모습을 바라볼 친구들에게 미움받을 용기가 부족했으리라.


그날은 한인민박에서 우리를 알뜰살뜰 챙겨주었던 이모님의 아들인 J오빠가 맛있는 저녁을

사주기로 했던 날이었다.

그동안 고생했고 디자이너가 될 기념으로 축하해 주기로 했던 자리였다.

-우리는 다 같이 합격할 줄 알았으므로 당연히 좋다고 했었다.-

아카데미에서 나와 슬픔과 아쉬움은 잠시 미뤄두고 금요일을 즐기자고 나섰다.


우리 넷은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파티를 하기 위해 J오빠가 예약해 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지중해식 음식을 파는 'SARASTRO'이라는 레스토랑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어둑하고 화려한 조명에 파티 분위기가 물씬 나던 그곳은

우리가 금요일 밤을 즐기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어대고 이야기를 나누며 불편했던 마음은 사르르 녹았다.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느덧 친구들은 진심으로 나를 축하해 주었다.

기꺼이 축하를 받고 남은 기간 동안 나도 너희와 함께 아카데미에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즐거운 금요일 밤을 마무리하고 우린 다시 민박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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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고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아카데미로 향했고

친구들 또한 힘을 얻어 주 초반에 바로 합격했다.

그렇게 우린 7주 차에 더 이상 안 나와도 된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자유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곳들을 방문했다.

테이트 모던, 타워브리지, 자연사박물관 등 그동안 보지 못했던 곳들 위주로 돌아다녔다.

버킹엄 궁전에 가서 교대식도 보고 하이드파크의 크리스마스 축제까지!

주말엔 1박 2일 짧게 파리도 다녀왔고 런던 근교 바스도 여행했다.


그리고 우린 고민하다 비행기표를 바꿔 일주일 먼저 한국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쉬운 순간이다.

다른 기수들은 유럽여행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우린 심신이 지친 상태였으므로

얼른 집으로 가고 싶었다.


그렇게 우린 7주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작된 디자이너 생활.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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