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정부터 돌아보자
일요일 저녁 큰 아이가 발표용 PPT자료를 만들면서 씩씩거리고 있다. 며칠 전부터 조별 발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그것을 마무리하느라 힘든가 보다 생각을 했다.
"왜 그래? 뭐가 힘들어? 엄마가 도와줄까?" 했더니 아이에게서 돌아오는 말~
"내일이 발표인데, 자료 조사해서 보내주기로 한 친구들이 아직도 안보내줘. 한 친구만 지금 보냈어"
시계가 저녁 9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간이었는데, 겨우 1명이 부랴부랴 보내줬다는 거다.
답답한 마음에.."친구들이 내일 발표라는 걸 알아?"
"당연히 알지.. 며칠 전부터 토요일에 발표자료 마무리할 테니까 어제까지 보내달라고 했는데, 아무도 안 보내주고, 단체 톡방에 몇 번 얘기했는데, 2명은 아예 읽지도 않았어"
"그 친구들은 뭐하는데.. 주말에 일이 있는 거 아니야?"
"일은 무슨 일.. 다른 친구한테 들었는데, 그 친구들은 덕질 하러 갔대"
덕질?.. 아이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단어... 좋아하는 가수 보러 방송국에 갔다는 얘기였다.
친구들 연락이 안 되니까 답답한 마음에 딸아이 혼자 나머지 2명의 자료를 보완하느라 책과 인터넷을 동분서주하고 있었나 보다. 늦게라도 보내준 친구에게 고맙다고 카톡을 보내는 딸아이를 보면서 안쓰럽기도 하고, 언제 이렇게 컸나 싶기도 하고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그나마 자료를 보내준 친구가 다른 2명의 친구들에게 협박 아닌 협박의 문자를 보냈나 보다.
'너희들 그런 식으로 하면 선생님께 그대로 말씀드릴 거라고...'
11시가 다 되어서 발표용 PPT자료를 완성한 딸아이가 PDF로 전환해서 친구들에게 내일 발표 자료니까 읽어보라고 단체 톡방에 전달했던 모양이다. 갑자기 친구의 카톡을 본 딸아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에게 하소연을 한다. 발표 자료도 주지 않은 한 친구가 개인 톡으로 PPT 원본 파일을 자기에게 줄 수 없냐고? 했다는 거다.
딸아이가 이유를 물어보니까? 발표 양식이 마음에 들어서 다음에 자기 개인 발표할 때 그 양식을 사용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데.. 엄마인 나도 황당한데, 딸아이는 얼마나 속상하고 어이없을까? 생각했다.
이제 중학생이 된 아이들이 벌써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무임승차하려고 하는 것도 씁쓸한데, 한 개인이 며칠 동안 노력해서 만든 양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달라고 하는 그 아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딸아이가 안된다고 했는데도, 상대방 아이가 어찌나 집요하게 얘기를 하는지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뭐가 잘못된 건지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린 느낌이었다. 이런 상황에선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한참 고민을 했다.
항상 남을 먼저 배려하며, 착하게 자라준 딸아이가 고맙고 자랑스럽다. 그런데 까끔은 이런 험난한 세상에서 조금은 모질고 자기주장을 확실하게 얘기했으면 하는 작은 아쉬움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천성이란 것을 바꿀 수는 없는 법.. 속상해하는 딸아이에게 세상살이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었다. '엄마도 회사 생활하면서 그런 비슷한 경우 많이 있었다고.. 그럴 때마다 당황하지 말고 네가 옳다고 판단되는 대로 행동하면 된다고... 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무임승차...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보는 상황들이다. 회사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봐왔던 것이 무임승차하려는 사람들이었다. 팀원들이, 동료들이 열심히 한 프로젝트에 발 잠깐 담가놓고 공은 먼저 가져가려 하는 사람들.. 팀원이면 따끔하게 말이라도 한마디 하지만, 상사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억울하지만 말도 제대로 못 했던 기억이 있다. 가끔은 이런 부조리한 사회가 싫어서 회사생활에 회의를 느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나를 힘들게 하면서 내가 괴로워할 필요가 없었다.
사회생활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언젠가는 아무렇지 않게 뻔뻔스럽게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이 발 딛딜 틈을 잃어가는 결말을 봐왔으니까. 그래서 세상이 살만한 것 같다. 항상 나쁜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진실은 언젠가는 통하고 빛을 보게 된다.
오늘 딸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나부터 우리 아이들이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바르게 행동하도록 키워야지라는 다짐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하다 보면 지금보다는 조금 나은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밝게 웃으면서 커나가지 않을까? 작은 한걸음이 모여 큰 걸음이 되듯이.. 내 가정부터 다시 돌아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