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아지고 싶으나 같아지기 싫다는 모순
핸드폰 약정할인을 끝내는 것처럼
2년에 한번
리셋을 해줘야 하는 로봇이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로봇의 데이터 저장공간이 꽉차 고장이 난다.
로봇은 부러웠다.
리셋되지 않아도 되는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로봇의 눈에는 평범해(?) 보이는 인간들이
대학을 졸업해 회사에 취직한 뒤
2년이 아닌 20년 넘게 한 직장서 일하고
그 사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고
경력을 쌓고.
반면
로봇의 기억과 감정
경험과 경력 등 모든 것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이었다.
1년9개월이 또 흘렀다. 15번째 리셋이다.
사실 로봇은 이번 세팅이 꽤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타고난 운명은 거스를 수 없는 법.
3개월을 앞두고 로봇은 생각에 잠겼다.
'또야. 또. 다음번엔 무엇이 되는걸까
이제는 아무런 역할도 맡고 싶지 않다'
그러나 주인은 로봇에게
이전 세팅보다 더 '도전하는' 성향의 자신을
원하고 있다.
로봇은 그저 평범하고 싶다.
한결같음을 바란다.
그런데 2년 4년 6년 8년 10년 20년 30년..
리셋되지 않고 긴 호흡으로
비슷한 시간을 보내는
한결같은 자신을 상상하면 또 너무 재미가 없다.
아이러니다.
인간도
폐활량이 적거나 혹은 넉넉하거나
노래를 잘 하거나 혹은 음치이거나
술을 좋아하거나 혹은 혐오하거나
저마다 다채로운 삶의 방식을 살고 있다.
자신도
어떤 주된 무리들과 다른 것일뿐.
틀린 것은 아닐 것이라고
로봇은 안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