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사회, 최상위를 위한 역사 포장지
드라마 <송곳>은 불편하다.
굳이 기득권층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한번쯤, 아니
빈번하게 마주하는 불합리한 상황들.
이 상황들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외면하거나 혹은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맞서려는 누군가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곳의 주인공처럼
대형마트 공채로 입사해
서울에서 손에 꼽는 규모의 대형마트에서
2년동안 매장영업 매니저를 맡은 적 있다.
그곳에서 나는 인간은
'계급짓기'를 좋아한다는, 책에서만 본 이론을
몸소 체험하고 깨달았다.
주임급은 주임급대로
선임급은 선임급대로
알바들은 알바들대로
여사님들은(안에서 이렇게 불렀다) 여사님들대로
파견직원들은 파견직원들대로
어우러졌다. 절대 서로의 선을 넘지 않는다.
송곳에서 나오는 대사들을
실제로 나는 매장에서 수없이 들었다.
"매니저는 상품 진열하지 말랬죠?"
"파견기간이 끝나셨네요.저희도 죄송하지만.."
"대리면 대리답게 굴어야지"
"점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들어야지"
'말도 안 되는 계급 개념은 무시하고
그냥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사람 대 사람으로서 함께
공동의 목표를 위해 일하고 싶다.'
보름이 넘는 공채합숙교육을 받는 동안 그렸던
신입사원의 순진했던 희망사항은
매장 첫 출근 당일 깨졌다.
앞으로 가장 가까이서 함께 일해야 하는
선임들은 나를 어려워하거나 뒤에서 무시했고
공채선배들은 선임들의 이름이나 성격보다
공채로서 조직 기강을 잡을 때 필요한 규율을
먼저 가르쳤다.
입사초기 희망사항은
출근할 수록 점점 작은 알갱이로 부셔졌다.
마치 매일 출근할 때마다 한번씩만
과자봉지를 주먹질한다고 했을 때
어제보다 더 작게 바스러질 수밖에 없는
과자 부스러기처럼.
'매니저라는 사람이'
여자라는 것도 큰 장애물이었다.
친절한 카리스마로는 절대
'아랫 사람들을 다스릴 수 없다'는 선입견.
이것은 비단 대형마트의 생존논리는 아니다.
대형마트 주임과 대리와 과장을 넘어
점장을 넘어
그 위, 또 그 위에..
요즘 국민을 '다스린다'고 생각하는
국회의원 앞에서
국민 모두가
과자 부스러기만도 못한 존재가 되고 있다.
반지르르한 포장지에 싸여진
과자의 모양새(체제)를 유지하려면
봉지 안이 어떻게 바스러지든 모르쇠로 일관한다.
국정교과서 채택 확정고시를 하루 앞두고
많은이들이 그냥 아무런 힘도 형체도 없이
포장지 안에서 질소와 함께 떠다니는
과자 부스러기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 사회는 대체 언제부터
먹을 수 있는 과자 부스러기보다
포장지가 훨씬 중요한 사회가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