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곳이 있다는 믿음은
<집>
바람의 숨결에 귀 기울이고
지나간 자리 흔들림을 허락하며
단단한 존재로 거기에 있다.
땅속 깊은 보이지 않는 대화
나의 푸름으로
너의 세상 덮어주는
나는 나무처럼 머물고 싶다.
by 이은
세상살이 눈앞에 놓인 것 해치우는 것만으로도 바빠 직진만 했던 때, 내가 서 있을 곳이 없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지금 내 삶 속에 내가 있을 곳이 없다는 생각은 그 당시 나를 현재에 속하지 못하게 했다. 학교, 집, 친정 어디에도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로 있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사실은 나를 많이 아프게 했다. 빠꾸! 나는 어디로 돌아가야 할까? 내가 돌아갈 곳은 있을까?
주어진 역할과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는 말과 행동으로 나를 치장하고,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은 안으로 삼키며 앞으로만 나아갔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잘 가고 있다고 잘하고 있는 것이라 믿어왔지만 가장 중요했던 '나'자신이 빠져있음을 보았을 때 나는 방향을 잃고 멈춰 섰다. 걸으며 물었고 책을 읽으며 찾았다.
결국 내가 돌아갈 곳은
'나' 자신이 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나'자신으로 서는 그 자리에서
나는 다시 시작하고 있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즐기며 기쁨을 찾고, 내게 주어진 것들 안에서 잠시라도 내가 나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든다. 하루의 끝에서 나를 돌아보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내 삶의 중심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내가 진정으로 속해야 하는 자리가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중심을 잃지 않는다. 그 마음은 흔들릴 때 나를 붙잡아주는 단단한 뿌리가 되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믿음은 삶을 견디는 힘이 된다.
인생의 중반,
U턴 표시 앞에 멈춰 선 어느 날,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아빠 관식이 딸 금명에게 늘 했던 그 말이 나의 뇌리를 스쳤다.
"못하겠으면 빠꾸!"
"아니다 싶으면 빠꾸해. 그냥 와. 아빠 여기 있어."
어떤 길을 가던 어떤 선택을 하던 상관없이 항상 그 자리에 서 있겠다는 말, 안 되면 돌아와도 된다는 그 말 한마디는 드라마 속 딸 금명에게 인생의 백업 그물 같았다.
문득 자기만의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내 아이들에게 우리 집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곳으로, 마음의 안식처로 존재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믿음은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길을 찾을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가장 자기 다운 모습으로 다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곳, 어떤 모습으로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곳으로 존재하고 싶다. 인생의 든든한 백업 그물로 삶을 견디는 힘이 되어주고 싶다.
"괜찮아.
오늘도 충분히 잘했어!"라고
잘하고 있다고
잘 해내고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