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Part1.

덕수궁 미술관

by 이은 Lien


광복 80주년 기념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11월 9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일제강점기에서 현대까지 '고향'을 주제로 각 시대의 한국 풍경화를 살펴보며, 75명 화가의 21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전시는 '향토(鄕土)', '애향(愛鄕)', '실향(失鄕)', '망향(望鄕)'이라는 네 가지 소주제로 구성되었다.



제1부: 향토(鄕土)-빼앗긴 땅


한국 근대미술은 일제강점기 '신흥미술'로 인식되던 서양화의 도입과 함께 본격화되었다. 1922년부터 개최된 <조선미술전람회>는 수많은 화가들의 등용문이 되었고 이 전람회에 출품된 대다수 장르는 풍경화였다. (중략) 식민지이자 삶의 터전이었던 이 땅은 제국주의 일본의 시선에서 문명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원시적인 향토로 그려지는데 주로 파란 하늘과 붉은 토양, 한가로운 들녘을 거니는 물동이를 인 여인과 목동, 원색의 푸른 초목과 강가 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삶의 터전으로서 이 땅을 그린 화가들은 우리 자연 고유의 색채와 형태를 관찰하고 주변 일상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묘사하는 데에 주력했다. 이 시기 향토 풍경에는 각 지역의 풍토와 지형의 특색이 회화기법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전시 해설 중에서


서동진 <풍경>과 <팔레트 속의 자화상>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정지용 <고향>(1932)


일제강점기 문인들에게 '고향'은 그리움의 대상이자 상실된 정체성이었으며, 태어난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과 마음의 안식처, 나아가 향토와 조국, 이상향 혹은 영원한 그리움의 공간으로 그려졌다.


박명조<풍경>과 <시골길>, <해경>과 <고향풍경>, 권진호<언덕길>
금경연 <경산 가로수 풍경>과 김인지<애(涯)>


일제강점기의 풍경화는 제국주의 일본이 식민지를 바라보는 이국주의 이외에도 민족의 정서를 고취시키는 공간으로서의 '향토(鄕土)', 그리고 진정한 조선을 표현하기 위한 순수한 예술적 동기라는 복잡한 시선이 얽혀있다. -전시 해설 중에서


김인지는 제주 출신 미술가로 두터운 물감의 질감과 강한 명암 대비, 과감한 필치로 제주 풍광과 향토적 정서를 생동감 있게 그려 내었으며 성산포, 제주항, 한라산 등 고향의 풍경을 소재로 한 작품을 다수 남겼다. 초기작 <애(涯)>는 서귀포 정방폭포 근처 절벽에서 빨래하는 아낙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이상정 <표박기>와 중국망명시절 사용한 가방

<표박기>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시인의 형인 이상정이 항일무장투쟁에 나서며 중국으로 망명한 이후 약 5년간 유랑생활을 직접 기록한 육필 기행문이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윤동주 <또 다른 고향>(1941)


이번 전시는 문학에서의 향토애 고취를 다룬 작품들이 낭송되고 함께 전시되어 더 깊은 울림이 있었다.


이인성 <선유도>, <무제>, 이인성 화첩<운상>
이인성 <사과나무>와 <온일>


이인성의 화첩은 19세였던 1930년 제작되었으며, 화첩의 제목 <운상>은 '구름처럼 떠오르는 생각'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림의 대부분은 한 획의 붓질로 그려내었으며, 각 장의 하단부에는 그림마다 짧은 시구와 단상을 더하여 자신의 내면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표현하고자 했던 이인성의 예술관을 엿볼 수 있다.



이인성 화첩 <운상> 종이에 수채 물감


화첩 앞표지에는 도안화된 문자로 하단에 '께'라고 적혀있어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나 그 대상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 화첩은 당시 흔히 사용되던 검은 사진첩에 9x6cm
크기의 작은 흰 종이 그림 총 12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22장의 그림이 영상으로 흘러가며 나오는데 눈을 뗄 수 없었다. 화첩 <운상>은 1 전시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맑은 색감에 간결한 문구의 그림은 지금의 캘리그래피를 떠올리게 했다.





제2부. 애향(愛鄕)-되찾은 땅


광복이 되자 우리 미술은 일본화풍, 일본 취향의 소재를 걷어내고 서구 모더니즘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적 소재와 색채, 미의식을 함께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국토에 관한 관심이 지대해지면서 유구한 역사적 진동의 자취를 남긴 지역을 그린 산수 풍경화가 유행하게 되고 작가들에게 고향은 예술적 모티브로 작용하는 중요한 배경이자 근간이 되었다.



이응노<홍성월산화>와 <고향집(2)>
이응노<고향>


이 전시실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고향을 모티브로 제작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전시 '광복 80주년 가나아트컬렉션 특별전'에서 보았던 이응노의 여러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서 반가웠다. 이응노는 고향 홍성과 일대의 풍광을 수묵의 다양한 조형 실험을 통해 근대 수묵화의 혁신을 이룩하였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김환기, 전혁림, 유영국의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고향 통영의 풍광에서 독자적인 색채와 형태를 찾아낸 전혁림(1916-2010)의 작품은 강렬한 푸른 청색, 물빛색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전혁림 <달과 돛배>와 <청색들녘>
<통영풍경>
<바다와 나비>


바다와 나비

김기림

아모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힌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 무우밭인가 해서 나러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러서
공주(公主)처럼 지처서 도라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어서 서거푼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김기림 시집>(1946, 신문화연구소)


전혁림의 <바다와 나비>는 김기림의 시 [바다와 나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이라고 한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단청, 보자기, 창살 문양 등 한국적인 모티프를 사용했으며 그 위를 날고 있는 나비의 힘찬 날갯짓에서 역동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강렬한 푸른 청색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전혁림 <운하교>와 <항구풍경>


고향 신안 안좌도의 푸른 섬과 하늘, 달을 모티브로 한국적 모더니즘을 실현한 김환기 작품으로는 <섬 스케치>, <운월>, <산월>, <섬>, <종달새 노래할 때>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저 꿈같은 섬이요,
꿈속 같은 내 고향이다
겨울이면 소리 없이 함박눈이
쌍이고 여름이면 한 번씩
계절풍이 지나는 그런 섬인데
장광이 비슷해서 끝에서 끝까지
하룻길이다

김환기, <내 고향의 봄(3)목포>
동아일보(1962.3.5.)



유영국 <산> 연작


유영국(1916-2002)은 고향 경북 울진의 산 지형만 꾸준히 탐구하여 한국적 추상 형식을 완성했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산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자연의 신비와 숭고함을 담고 있다. <산> 연작은 고향에 대한 반사적 노스탤지어이자 자연과 추상의 조화로운 탐구로 평가받는다.



손일봉 <황남대총>, <대구 청라언덕>, <바위와 파랑새>
문신 <뒷산과 하늘(언덕-구름B)>, <고기잡이>
변시지 <서귀포>, <절도>, <고향>, <풍파>


고향 경주로 돌아와 신라 유적지를 비롯한 다수의 풍경화를 남긴 손일봉, 고향 마산의 풍경을 해방의 활기찬 기운으로 전한 문신, 고향 제주에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발견한 폭풍의 화가 변시지 작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작품 속 고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마음속의 그곳, 떠나온 삶의 터전이자 기억 너머의 그리운 곳을 의미했다. 고향의 풍경을 그린 다수의 작품들을 보며 어떤 화가는 색채로 그리움을 표현하고, 어떤 화가는 형태로 표현하지만 그 안에 깃들어 있는 고향에 대한 그리운 마음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의 마음이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고 그것이 바로 예술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부 '실향(失鄕)'과 4부 '망향(望鄕)'의 작품들은 Part2. 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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