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 가는 길

외로움에 대한 단상

by 거짓말의 거짓말

구정 연휴의 첫날이었다. 느지막이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형과 함께 찜질방에 가기로 했다. 간편한 차림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속옷을 챙겼다. 현관에서 최근의 습관대로 매번 신던 하얀색 단화를 신으려고 집어 들었다가 관두고, 전역하기 전에 신던 검은색 캔버스 스니커를 신기로 했다. 흰 단화가 너무 더러웠기 때문이다.


전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 쇼핑몰에서 하얀색 단화를 구입했다. 모양도 마음에 들었고, 가격도 저렴한 데다가, 4cm 정도의 깔창이 들어가 있는 일종의 키 높이 신발이었기에 더 쓸모가 있었다. 외출을 해서 신발을 벗어야 될 일이 있을 것 같은 경우에는 외출하기 전에 미리 신발의 깔창을 빼놓고 다니면서 한 달 정도 쭉 그 신발만 신었다. 키 높이 신발을 신고 다닌다는 것을 남들이 보기라도 하면, 남들에게 나 스스로도 작은 키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는 것을 선전하고 다니는 것 같아 되도록이면 신발을 벗을 일이 있을 때는 일부러 신발의 깔창을 빼는 수고로운 짓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흰색 단화라서 그런지 한 달 정도 꾸준히 신었더니 너무 지저분해져 있었고, 나는 차선으로 예전에 신던 검은색 스니커를 꺼내서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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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와 잠시 걸었더니 걸음걸음마다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전에 신을 때는 분명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4cm의 깔창이 들어간 신발을 신다가 이번에 다시 밑창이 얇은 스니커를 신으니 걸을 때마다 내 걸음걸이가 의식되고 어쩐지 다리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졌다. 어느새 내 다리는 그 4cm의 깔창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리고 걸으면서 밑으로 쳐다본 내 발걸음과 발의 길이 또한 내 것이 아닌, 나보다 키가 작은 다른 누군가의 다리를 잠시 빌려와서 내 허리 밑에 붙여 놓은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지난 몇 년을 거쳐서 익숙해진 그 납작한 스니커의 감촉을 근 한 달간의 높은 깔창에 길들여진 나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완전히 잊어버린 것이었다.


‘전에 익숙하던 것도 새로운 익숙함에 길들여지면, 다시 처음의 익숙함이 찾아와도 어느 순간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는구나. 반대로 처음에 조금 어색하고 낯설더라도 어느 순간 익숙해지기도 하는구나.'


익숙함과 낯섦의 계속된 반복을 겪다 보면 어느 순간 익숙함에는 익숙한 그대로, 낯선 것에 대해서는 많이 어색해하지 않고 능숙하게 넘길 수 있는 능력이 생기진 않을까? 다시 말해 훈련을 통해서 익숙하지 않은 낯섦을 대할 때도 조금 더 능숙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도대체가 초대장도 없이 문득문득 나를 찾아와서는 가슴 어느 한 구석을 차가운 손으로 두드리는, 결코 익숙해지지도 능숙해지지도 않는 이 외로움과 공허함이란 불청객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거지? 이런 바보 같은 생각들을 하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나는 형과 함께 근처 찜질방의 카운터 앞에 서 있었다. 형과 함께 카운터에 서서 찜질을 할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그만두고 목욕만 하고 나오기로 했다. 가운 없이 키만 받아 들고 욕탕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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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옥탕(41도), 테마탕-히말라야 유황탕(43도), 열탕(45도), 온탕(36도), 냉탕(21도), 급랭탕(15도)


여러 개의 탕이 있었다. 가볍게 씻은 뒤에 청옥탕에 몸을 담고 반신욕을 했다. 탕의 모서리에서 작은 꼬마애가 쪼그리고 앉아 탕에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넣었다 뺐다 하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온도를 재고 이제 들어오려나 싶었는데 꼬마는 다른 쪽으로 가버렸다. 조금 아쉬웠다.


‘아이한테는 너무 뜨거운가?’


내가 몸을 담근 탕은 최고 온도가 41도 정도였는데도 상당히 뜨겁게 느껴졌다. 고작해야 내 몸과 5도 정도 밖에는 차이가 나지 않을 텐데……. 잠시 후에 나는 36도의 온탕에도 들어가 보았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온탕의 물도 미지근하다기보다는 따뜻하게 느껴졌다.


‘어라? 왜 내 몸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온도인데도 따뜻하게 느껴지는 거지?’


한창 과학책을 즐겨 읽던 중학교에 다닐 무렵에 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다. 왜 여름에는 30도만 넘어가면 사람들이 찌는 듯한 더위를 느끼고, 온탕 물은 36도만 되어도 따뜻하게 느껴지는지를.


하지만 한참을 기억해 내려 노력해도 그 기억은 쉽사리 되살아나지 않았다. 무언가의 대답이 필요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서 엉터리 답이나마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건 말이야.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36.5도에 따뜻함을 느끼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비록 36.5도보다 낮은 온도일 지라도 조금은 따뜻하거나 미지근하다고 느끼는 거지. 만약 사람이 사람을 안았을 때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지금보다 덜 서로를 껴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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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누군가로부터 체온과 온기를 느꼈던 적이 언제였던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런 적이 있었던 적이 있긴 한가? 하지만 그런 거라면 익숙하고 능숙하지 않더라도, 낯선 느낌 그 자체로도 반겨 줄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니 아까의 그 귀엽던 꼬마 아이가 36도의 따뜻한 온탕에 몸을 담그고 손가락으로 물을 튀기며 놀고 있었다.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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