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서점 같은 사람
집에 오는 길에 두 번째로 중고서점(알라딘 중고서점 부천역점)에 들렸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긴 했지만 두 번째로 책을 한 봉지 사들고 나오니 이 장소에 어떤 '의미'같은 게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첫 방문은 약간은 즉흥적이었다. '우연'이라고 불러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흐음, 동네에 이런 곳도 있었네. 한 번 들어가 볼까.'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다시 이곳을 방문하게 되자 처음의 기억에 무언가 새로운 것이 쌓였다. 아마 세 번째로 방문을 하게 되면 기억에 기억이 또 쌓일 것이다. 그러면 중고서점은 내게 옆 건물에 있는 낯선 미용실과도, 혹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위층의 헬스장과도 다른 '특별한' 장소가 될 것이다. 길을 걷다 마주치고 스치는 수많은 장소 중에 나와 연결된 몇 안 되는 장소.
똑똑
수많은 장소를 스치듯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개중에는 '중고서점'같은 사람이 있다. 한 번쯤은 들어가서 안에 무엇이 있나 살펴보고 가능하다면 나와 연결되는 접점을 만들고 싶은 사람. 노크를 한다. 때때로 어떤 장소가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의 아지트가 되는 것처럼 '그 사람 안에는 나만이 갈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서.
똑똑
여기서 운이 좋게 안에서 문을 열어준다면 무언가 새로운 것이 시작될 수 있다.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다. 문을 연 사람은 나에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오셨으니 안에 들어와서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실래요?" 하고 물어봐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아, 어쩌다 우연히 이쪽을 지나칠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어쩐지 좋은 느낌이 들어서 꼭 한 번 들르고 싶었어요."하고 말하면서 한 쪽발을 문지방 너머로 내밀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대개의 경우 내 기대를 저버린다.
똑똑
응답이 없다. 어쩌면 이 집의 주인은 잠시 외출했을 수도 있다. 잠시 외출해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집 안에 있지만 지금은 샤워를 하고 있거나 잠이 들어서 내 노크 소리를 못 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 사람은 내가 노크를 하러 올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을지도 모른다. 창문을 통해 내가 몇 번 이곳을 지나칠 때 발검음을 늦추고 주변을 둘러봤다는 것을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노크를 하러 이 문으로 다가올 때 창문을 통해 슬쩍 확인을 하고는 일부로 응답을 하고 있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나를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으로 규정하고 마음의 빗장을 걸어둔 걸지도 모른다.
괜히 노크를 했나. 조금 후회가 된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어쩐지 노크를 한 것이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실례인가 하는 자책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장난으로 노크를 한 것이 아니다.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는 아이처럼 그냥 한 번 재미 삼아 노크를 한 것은 아니다. 여러 차례 이곳을 지나치며 많은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한 끝에 조심스럽게 노크를 한 것이다.
나는 내 가족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 남의 집에 함부로 노크를 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꼭 한번 방문을 해보고 싶은 집이 있다. 노크를 하고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다. 나도 함부로 아무나 손님으로 받는 것은 아니라서 그쪽의 집주인이 내게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고 해서 화를 낼 수는 없다. 다만 큰 마음을 먹고 노크를 했는데 안에서 응답을 해주지 않으면 어쩐지 굉장히 쓸쓸한 기분이 든다. 다시 한 번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느낌이 든다.
삼세번. 스리아웃. 스트라이크 세 개.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 버리고 세 번까지는 노크를 하기로 한다.
똑똑(두 번째다.)
똑똑(세 번째다.)
세 번이나 노크를 했는데 응답이 없으면 역시나 상대 쪽에서 일부로 나를 피한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이 장소와 나는 서로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기억을 만들 수 없었다. (설령 내가 그것을 간절히 원했다 할지라도) 나는 가던 길을 계속 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