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과 아멜리 노통에 주석 달기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내가 원해서 혼자라면 싫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전혀 그러지 못했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설사 금세 다시 외톨이가 되는 호사를 누리게 될지언정 말이다 <앙테크리스타 by 아멜리 노통>
나는 혼자였다. 하지만 혼자라는 사실이 지독하게 견디기 힘든 것은 아니었다. 깨어있는 내내 내가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이따금씩 문득 계절이 바뀌는 것을 느끼듯 자신의 외로움을 깨달을 뿐이었다. 물론 외로움은 계절의 변화보다는 훨씬 짧은 주기로 나를 찾았다. 또 계절의 변화처럼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준비를 하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다. 지금의 외로움이 언제 가는 끝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평생 동안 이 외로움이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외로움을 즐겨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내가 느끼는 외로움은 끝나지 않았고 나는 느리지만 천천히 한 살 한 살 나이를 더 먹어가고 있었다. 이제...... 외로움과 결별을 선언한 나에 대해 상상하는 것조차 어색한 일이 되어 버렸다.
외로움은 나의 일부가 되었다.
하여간 그와 같은 얼굴의 아름다움을 묘사한다는 것은, 마치 소나타와 칸타타의 언어화되지 않은 아름다움을 말로써 접근하려는 것만큼이나 부질없고 어리석은 짓입니다. 차라리 칸타나나 소나타로 그녀의 얼굴을 묘사하는 건 가능할지도 모르죠. 그 같은 신비와 맞닥뜨린 사람의 불행은 , 더 이상 다른 것에는 흥미를 잃는다는 겁니다. <앙테크리스타 by 아멜리 노통>
‘첫눈에 반한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첫눈에 반하는’ 일이 존재한다는 것일 거다. 유니콘이나 용과 같은 상상의 산물일 뿐일 대상을 지칭하는 말이 있다는 사실을 반론(첫눈에 반한다는 말도 존재하지 않는 현상에 대한 상상일 뿐일 수 있다)으로 제기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불완전한 인간의 말과 상상력은 표현 불가능한 인간의 감정적 영역에 대한 일종의 그림자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감성적 영역에 대한 표현에 있어서 상상력으로만 단어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록 창의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감정이 먼저 있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그것을 닮은 결핍되고 부족한 어떤 단어를 만들어 낼 뿐이지 않을까.
내 실수는 사랑하게 될 운명을 어떤 주어진 사람을 사랑할 운명과 혼동한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 필연이 아니라 클로이가 필연이라고 생각하는 오류였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by 알랭 드 보통>
사랑에 빠지는 일이 이렇게 빨리 일어나는 것은 아마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에 선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구가 해결책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by 알랭 드 보통>
‘상대를 사랑하는 사랑’과, ‘사랑 자체를 사랑하는 사랑’에 대한 논의는 이제는 진부한 것이 되어 버렸다.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사랑하는 나르시스의 사랑. 하지만 그것에 빠져있는 순간에 그것을 깨닫기는 상당히 어렵다.
사랑의 고백이 이루어지는 순간 때때로 사랑 고백을 받은 당사자는 상대방을 시험해 보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녀는(보통은 그녀다) 10여 년 동안 삶에서 배운 연기력으로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한 체 이렇게 묻는다.
“도대체 저를 얼마나 봤다고 이러는 거예요. 당신 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잖아요?”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와 같은 질문이다. 상대방을 100% 알고 있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좋아하는 것은 상대방을 전혀 알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방을 좋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만약 100%로 상대방에 대해 아는 일이 가능하다고 가정을 한다 해도 우리는 100%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상대에게는 어떤 매력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지구 반대편에서 우리가 해를 볼 때 달을 보며 생활하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상대방에 대해 오히려 매력을 느끼는 게 쉬울 것이다. (100% 앎은 100% 무지보다 덜 매력적이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상대방은 물론 나 자신에 대해서도 100% 안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아마 누군가가 자신에 대해서 100% 아는 일이 가능하다고 하면 그들 중 다수는 권총의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전화는 전화를 하지 않는 연인의 악마 같은 손에 들어가면 고문 도구가 된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by 알랭 드 보통>
연애 초기, 혹은 연애의 절정에서 전화기, 그리고 요즘의 문자 메시지는 연애의 스펙트럼을 더욱 다양하게 만드는 훌륭한 도구다. 연애의 진행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란 이성과 감성적 영역에 가능한 균등한 에너지를 배분하는 것이다. 가령 상대에게 보낸 문자에 대해 상대가 응답이 없을 경우 '흠. 지금은 무슨 다른 일을 하고 있는가 보네. 이따 보면 연락하겠지.'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가장 이상적이다.
이성적 영역보다 감성적 영역이 비대하게 클 경우 문자를 기다리는 시간은 있지도 않은 과거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을 하게 만들고 지속적인 자기비하를 하는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감성적 영역이 식어버리고 이성적 영역이 극단으로 커지게 되면 상대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는 다만 30원짜리 80 kbt의 디지털 암호로 느껴지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외로움은 크리스티를 만난 이후로 더욱 깊어졌다. 이제는 그 애가 내 존재를 보지 않을 때면 외로움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지독한 고독에 몸부림쳤다. 완전히 내버려진 느낌이 드는 것이다. // 심지어 벌을 받는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녀는 내게 말을 걸지 않는 건 내가 뭔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내가 벌을 받아 마땅한 이유를 찾느라 내가 한 행동들을 되짚으며 몇 시간을 보내곤 했다. 벌의 근거를 도무지 찾지 못해도 나는 벌의 정당성을 의심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앙테크리스타 by 아멜리 노통>
위는 '감성적 영역의 에너지 > 이성적 영역의 에너지'인 경우의 예다.
내가 오래 희망을 품을수록, 내가 원하는 사람은 더 고귀해지고, 완벽해지고, 희망을 품을 만한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곧바로 우리에게 입맞춤을 허락하는 사람(우리는 곧 배은망덕 해진다)이나 절대 우리에게 입맞춤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우리는 곧 그 사람을 잊어버린다)이 아니라, 수줍어하며 그 양극단 사이로 우리를 이끄는 사람이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by 알랭 드 보통>
가장 매력적인 사람에 대한 보통의 정의에 대해서 이견을 제시할 일말의 여지도 보이지 않는다. 가장 매력적인 사람에 대한 보통의 정의는 국어사전에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단어가 있다면 바로 정의로 채택되어도 좋을 정도다.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쉽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by 알랭 드 보통>
-매력적인 소녀를 앞에 두고 페이스를 유지하는 법
일단 매력적인 소녀들을 보면 약간 긴장하게 되는 건 보통 남자라면 마찬가지.
하지만 난 정도가 좀 심한 듯.
보통 그런 걸 알레르기라고 하지만 내 쯤되면 거의 선천성 예쁜 소녀 면역 결핍증 정도.
현재까지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았지. 아무튼 그래서 어떻게든 찾아낸 방법도 참 웃겨.
일단 그런 소녀들을 멀리서 보고 직접 대면은 안 하는 게 최고지만 어떤 이유에서든지 얼굴을 봐야 할 사이라면 주눅이 드는 걸 막기 위해 얼마간의 시간을 그 소녀의 단점을 찾아내는 데에 들이는 거지. 막연히 첫인상이 좋았다거나 정말 예쁜 소녀일지라도 집중해서 단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면 일주일이면 그럭저럭 발견할 수 있거든.
가령 눈이 짝짝이(대게 보통 사람이라면 거의 100% 눈이 짝짝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라거나, 얼굴에 작은 뾰루지가 있다거나, 머리끝이 갈라졌다거나, 손톱이 항상 단정하게 다듬어져 있지는 않다든지 하는 것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좀처럼 예쁜 소녀들이란 보통의 사람을 대하듯 할 수 없거든.
도저히 외모에서는 단점을 찾을 수 없으면 성격이라든지 소문도 좋지.
그녀의 친구들을 통해서 그녀의 단점을 한두 개 정도는 발견할 수 있거든.
예를 들어 변덕이 심하다든지, 계단을 지독히 싫어해 엘리베이터만 탄다든지, 아니면 자기를 정말 공주처럼 대해주지 않으면 속으로 맘 상해한다든지. 그런 것들.
그리고는 다음에 보거나, 만날 일이 있으면 그 소녀의 그 단점만을 떠올리는 거야. 손톱 모양이 예쁘지 않다. 계단을 지독히 싫어한다. 그런 식으로 자기 암시를 걸고 대하면 어느 정도는 보통 사람 대하듯 할 수 있다고!
우리 같은 부류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서로를 위로 하기보다는 자기 능력 밖의 사람을 좋아한다. 우리는 우리가 안고 있는 콤플렉스와 거리가 먼 사람들을 필요로 했다. 매력적이고 눈부시게 빛나는 크리스타 같은 사람을 필요로 했다. <앙테 크리스타 by 아멜리 노통>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 할 수 없다는 것도.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by 알랭 드 보통>
때때로 내가 하는 말, 내 느낌, 내 생각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상대방이 사실은 전혀 다른 언어로 내 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사랑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착각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정작 상대가 나를 사랑해 줄 경우에 그/그녀의 매력이 순식간에 바랠 수가 있다는 것이다. // 상대가 나의 사랑에 보답할 때 잔인한 역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묻게 된다. “이 사람이 정말로 그렇게 멋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by 알랭 드 보통>
사랑의 역설. 우리는 기본적으로 사랑에 빠진 대상을 이상화한다. 상대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나 상대의 마음(이 경우 미천한 나에 대해 그녀가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을 알 수없기 때문에 상대는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올라 천사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어느 순간 천사가 내 응답에 응하고 날개를 접고 지상에 내려와 한 명의 인간이 되는 순간 비극이 시작된다.
연인에게도 절대로 네 사랑으로 꽉 채워진 이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냐, 아니면 네가 상상한 것에 불과하냐 하고 묻지는 말아야 한다.
사랑에 빠져서(Falling in love) 허우적 대고 있을 때 이런 의심이 들어설 여지는 없다. 하지만 이제 저녁이 다가오고 있고 배가 고파지고 있다면 슬슬 사랑이라는 강에서 나와 잠을 자러 가야 한다. 집에 도착해서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마무리해야 할 리포트를 작성하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침대에 누웠는데 가장 먼저 연인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게 되면 위와 같은 생각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내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 혹은 내가 사랑하고 있는 대상은 무엇이지?’ 하고. 나는 정말 상대방을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작은 의심들은 점점 더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가령 그전까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약속시간에 10분 정도 지각하는 연인의 행동, 데이트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 혹은 그전까지는 나와 달라서 매력적이로 보였던 연인의 성격마저도 조금씩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의 연인이 될 수도 있었지만 운이 닿지 않아 우리가 알 기회도 얻지 못했던 사람과 마주치면 우리는 낭만적인 노스탤지어에 젖는다. 현재와는 다른 사랑의 삶의 가능성과 마주치면 우리가 현재 사고 있는 삶은 가능한 수많은 삶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by 알랭 드 보통>
둘만의 완벽했던 하나의 세상에 금이 가는 순간이다. 아담과 이브의 낙원에서 둘은 행복했다. 하지만 선악과를 따먹고 인식을 얻게 된 그 둘은 그 둘이 사는 동산 말고도 수많은 동산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세상에는 자신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one and only 였던 상대방은 이제 one of the many일 뿐이다.
사랑의 매력은 그것이 시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현재의 애인과 함께 있을 때 과거의 사랑을 대하는 무관심에는 특별히 잔인한 면이 있다. 오늘은 이 사람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희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몇 달 후에는 그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길(또는 서점)을 건넌다는 것은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by 알랭 드 보통>
과거와 현재가 싸울 때 결국 이기는 것은 현재다. 다만 남자의 경우 현재는 과거에게 큰 상처를 입고 힘겹게 이기지만 여자의 현재는 간단하게 과거를 KO 시켜 버린다.
상대방에게 무엇 때문에 나를 사랑하게 되었느냐고 묻지 않는 것은 예의에 속한다. 개인적인 바람을 이야기하자면, 어떤 면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by 알랭 드 보통>
확실히 상대방을 사랑하는 이유가 ‘너는 눈이 예뻐’ ‘네가 밥 먹을 때 음식을 흘리는 서툰 모습이 귀여워’ ‘너와 나는 이름의 이니셜이 두 글자나 같은걸. 이건 운명이야.’ 따위의 이유라면 불안하다. 세상에는 눈이 예쁘고, 밥을 먹을 때 음식을 흘리고, 이름의 이니셜이 같은 사람은 많이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유가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너 이기 때문에’가 되어버리면 간단해진다. 가장 모호한 답이지만 동시에 가장 완전한 답이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가장 미심쩍은 답이지만 동시에 가장 만족스러운 답이다.
인간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으며, 그것 때문에 자살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되었다. 성난 개는 자살을 하지 않는다. 자신을 화나게 한 사람이나 물건을 물어뜯는다. 그러나 성난 인간은 침울하게 방 안에 틀어 박혔다가 말없이 종이 한 장만을 남기고 총으로 자살을 쏜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by 알랭 드 보통>
나는 크게 감명을 받지는 못했지만 게츠비의 권총 자살은 세가를 대표하는 사랑으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가 완벽하고 논리적으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인다면 그것은 의심해 봐야 한다. 사랑에 빠진 연인의 말은 두서가 없고 조리가 없게 마련이다. 누군가의 가슴에 사랑이 가득 차 있을 때 가슴의 사랑이 넘쳐서 머리로 흘러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 사람은 영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계산된 멋진 대사를 결코 날릴 수 없다.
그가 하는 말은 유치하고, 바보 같고, 어눌하고, 잘 표현되지 않은 ‘진심’ 일뿐이다.
이제 새로운 스텝을 밟아 나갈 차례다. That's the way story goes on.
죽지 않는 한 자신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때때로 죽은 이후에도 이야기만은 계속되기도 한다.
[2009년 8월 혹은 그 이전. 20대 중반 무렵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