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누군가가 내게 ‘당신 지금 외로운가 보군요?’라고 물어 오면 난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아마도 처음에는 별다른 고민 없이 긍정의 대답을 하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외롭다. 나는 외롭다. 외롭다. 외롭…….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도대체가 외롭다는 게 뭐지? 사람들은 보통 어떤 상황, 어떤 경우에 외롭다고 하는 걸까?
만약 누군가가 내 마음(감정)의 어떤 부분이나, 현재 내 상태에 대해서 질문을 해온다면 대개의 경우에 나는 yes인가 no인가를 분명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yes냐 no냐를 묻는 질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분명 상대방이 납득할만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혹시 지금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지 않습니까?’ 라거나 ‘아직까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적은 언제지요?’ 혹은 ‘지금 토할 것 같습니까?’와 같은 질문은 어느 정도 확실하게 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누군가 ‘당신 지금 외롭습니까?’라고 물어보면 답하기가 곤란하다.
외롭다는 감정의 저편, 정확히 말해 외롭다는 감정의 반대편에는 어떤 감정이 위치하고 있는 걸까?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어떤 감정의 극단에 위치한다면 그 반대편에 있는 감정을 안다고 했을 때 확실히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도 조금은 더 잘 알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외로움의 저편에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애초부터 외로움이란 감정의 반대편에는 어떤 감정도 없었을지 모른다. 처음부터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수많은 감정들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하나의 선위에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 공간의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거기에는 어떤 규칙이나 정렬 방식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수많은 사람들이 습관처럼 얘기하는 ‘외롭다’라고 하는 느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아채기 쉬운 마음의 어느 자리엔가 확실히 존재하면서 동시에 막상 거기의 본질에 접근하려고 하면 상당히 막연해지고 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가 ‘외롭지 않다’라고 느낀다면 그는 확실히 외로움이라는 공간을 벗어난 곳에 위치해 있는 걸까? 외로움의 반대편 끝이거나, 외로움의 외부-외로움을 경계로 안과 밖을 나눌 수 있다면-에 있는 걸까?
확실히 ‘살아있는 상태’의 반대는 ‘죽어있는 상태’다. 절반만 살았거나 절반만 죽은 경우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중간에는 아무것도 없다. -뇌사와 같은 경우에는 굳이 나누자면, 내 관점에서는 살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검은색과 흰색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그 사이에는 회색이라고 부르는 한 가지의 색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회색은 다시 무수히 많은 수의 다른 회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살아있거나 죽어있는 것, 흰색과 검은색. 어느 경우에 더 가까운 걸까?
아마도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전자의 경우보다는 후자에 더 가깝지 않은가, 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마도 ‘외롭지 않다’라는 감정을 안다고 해도 외롭다는 감정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무수히 많은 회색의 외로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외로움이라는 사람의 감정은 완전하게 이해를 하거나, 알 수 있어서 그 내용을 글이나 말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어떤 일들에 대해서는 그 일에 대해 차분히 글로 쓰거나 말로 표현해서 정리하다 보면 조금 더 명확하게 윤곽이 잡히는 경우도 물론 있다. 하지만 역시나 외로움이라는 사람의 감정은 그런 차원의 것은 아닌 것이다. 외로움이라는 풍경 안에 들어가서 그 풍경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직접 느껴야 만이 비로소 ‘아, 이런 것이 외로움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외로움이라는 풍경을 설명하기 위해 그 풍경을 사진으로 찍고, 다시 그 사진을 보며 외로움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말로 설명해 봐야 소용이 없다. 그리고 그 사진을 직접 보여준다고 해도 확실히 그 사진만으로 그것을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외롭다고 이야기한다. 모두들 그 풍경에 익숙하진 않더라도, 한번 정도는 그곳에 혼자 남겨진 경험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나도 그곳에 이미 여러 번 다녀왔을지도 모른다. 다만 누군가의 질문에 나 자신은 외로운지 아닌지 잘 모르겠으며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면에는 역시나 외로움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풍경에 대해서 아직은 조금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누군가에게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것은 확실히 부담스럽고, 어느 정도는 위험한 일이기까지 하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더욱 그런 것은 아닐까?
결국 ‘자신은 아직 확실하게 외로운 것은 아니다.’라는 명제에 대한 이 모든 합리화와 변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알고 있다. 아니, 기억하고 있다. 매번 비슷한 풍경이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그 외로움이라는 풍경이 주는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그 낯선 느낌에 대해서. 그리고 아마도 현대를 사는 대부분의 사람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느끼고 있을 거라는 것을.
“당신 외롭습니까?”
“아니요……. 아니,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외로워요. 외롭습니다. 당신도 외롭습니까?”
“…….”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외롭지 않을 수 있죠? 당신 알고 있습니까? 그 방법을? 아니요, 됐습니다. 사실 나도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외롭지 않을 수 있을지 정도는. 하지만 꽤나 어려운 일이군요. 외로움을 인정하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한 발을 내딛는다는 것은. 당신도 그렇습니까? 어때요, 그럼. 내 생각에 우리는 서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2007~2008년 대학생 시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