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비 모양을 한 나의 사랑

by 거짓말의 거짓말

요시무라는 그런 이야기를 끝도 없이 내게 늘어놓았다. 요시무라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유아 때에 부모한테 사랑을 받은 기억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렸을 적에 부모한테서 사랑을 받은 기억이 없거나, 부모와 소원했거나, 혹은 부모가 없어 쓸쓸한 마음을 가졌거나, 나아가 부모한테서 학대를 받았거나 했을 경우, 자신에 대한 가치가 현저히 낮은 인간이 되어 버린다. 자신에 대한 평가가 지극히 낮은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좋아하지 못하고, 자신을 좋아해 주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고 하는 전제를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그런 인간은 남들이 자신을 필요로 해 주는 것에 항상 굶주려 있어, 성적인 행위에 이끌린다. 상대가 자신의 몸이나 행위로 인해 욕정에 빠지고, 오르가슴을 얻기를 무의식 중에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들은, 상대가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 어떤지 통상적인 교제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성적인 흥분이나 오르가슴으로 그것을 알고자 한다. 상대가 젖거나 발기하거나 사정하거나 하면, 그제야 자신이 관여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중략)
타인이 자신을 필요로 해 주고 있다는 감각을 얻기 위해 성적인 흥분과 오르가슴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하는 요시무라의 생각도 틀린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아마도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2 days 4 girls 中 by 무라카미 류>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하지만 혼자라는 사실이 지독하게 견디기 힘든 것은 아니었다. 깨어있는 시간 내내, 내가 외롭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이따금씩 문득 계절이 바뀌는 것을 느끼듯, 자신이 외롭다는 것을 깨달을 뿐이었다.


물론 외로움은 계절의 변화보다는 훨씬 짧은 주기로 나를 찾았다. 또 계절의 변화처럼 일정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비를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때 내가 외로움을 느낄 확률에 대해 말해주는 일기 예보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우산을 들고나갈 수도, 겉옷을 단단히 챙겨 입을 수도 없었다. 다만 차가운 외로움의 비에 젖은 채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는 혼자 걸으며 생각할 뿐이었다.


아마도 오늘 같은 날 사람들은 외롭다고 말하겠지.

차가운 비에 젖은 어깨에서는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역시나 이런 나라도 피가 돌고 심장이 뛰는 구나라는 사실에 이유 없이 약간의 분노가 일었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다. 그리고 모든 문제의 시작은 거기서 부터였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인간이 외로움을 다루는 방법을 알리가 없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고독에 언제나 몸의 일부가 잠겨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는 신발의 밑창에 얇은 막이 있거나 양말이 젖는 정도일 뿐이었다. (그런 정도로는 내가 외롭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날은 몸의 절반까지 잠기기도 했고, 수위가 목덜미를 넘어 바로 코 밑까지 올라오는 날도 있었다. 몸이 차갑게 식어 갈수록 내 육체와 피부는 누군가의 체온과 온기를 원했다.


굳이 사랑이라는 감정의 사치가 개입되지 않아도 좋다. 누구라도 좋다. 다만 조금이라도 이 추위를 가시게 해줄 수만 있으면 된다, 라는 욕망이 차가워지는 몸과는 반대로 끓어올랐다. 끓어오른 욕망의 거품은 뭉치고 엉켜서 하나의 형태가 되었다. 그것은 등에 울퉁불퉁한 혹이 잔뜩 나고 불룩한 눈을 가진 두꺼비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괴물은 내 안의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며 살과 살의 격렬한 접촉을 바라고 있었다. 그 괴물과 마주하며 나는 나 자신을 더욱 혐오하게 되었다.


그러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였다.


애초에 내가 왜 자신을 싫어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거기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나는 경제적으로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적당한 관심과 무관심 속에서 자란 어디에나 있는 그런 아이였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하거나 애정의 결핍을 느꼈던 기억도 없다. 다만 어린 시절 누군가로부터 사랑해 라는 말을 배가 부를 정도로 충분히 들어 본 기억이 없다라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정도로는 내가 나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이유가 필요하지만 나 자신을 싫어하는 데는 이유가 없어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어쩌면 단지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화가 났을 뿐 인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타인을 탓할 수는 없으니 그 원인을 내게서 찾으려고 했다.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자신을 혐오하기 시작하자 나 같은 건 아무에게도 따뜻한 사랑 같은 건 받을 수 없다고 믿게 되었다. 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지,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나 자신을 싫어하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악순환의 고리는 분명하게 회전을 계속하고 있었고, 그곳 의 중심에는 불룩한 눈을 뒤룩 뒤룩 굴리는 등에 혹이 잔뜩 난 두꺼비가 있었다.


나는 자신을 싫어했지만 타인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진심으로 타인으로부터 내가 필요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만에 하나 내게 타인을 향한 사랑 직전의 감정이 생긴다 할지라도 결과는 언제나 둘 중 하나였다. 현재의 나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가능성을 가진 그 감정을 일부러 파괴해 버리거나, 그 감정을 나를 포함한 세상의 누군가에도 들키지 않도록 저 깊은 곳에 묻어두고는 봉하는 것이었다.

대개의 경우 나는 타인을 향한 사랑의 감정을 절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내가 어느 정도의 친밀감을 갖고 대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내가 사랑하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지금껏 두 번 정도 타인에게 내 감정을 드러냈던 적이 있는데 그 경우는 아마도 나 자신이 상대방에게 거절당할 것이라는 것을 애초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거라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정말로 사랑받고 싶었지만, 절대로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믿음이 깨지는 것이 두려웠다. 절대로 내 호의를 받아들일 리 없는 상대에게 두 번 정도 내 감정을 표현하고, 거절당했다. 나는 할 만큼 했다는 만족감과, 자신을 더욱 싫어하게 만드는 멋진 이유를 얻기에 충분했다.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나)이 망가지는 것을 보는 것은 묘한 쾌감을 주었다. 불룩한 두 눈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타인이 내게 인간적인 친밀감과 호감을 가졌던 적이 두 번 정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타인이 어느 선을 넘어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고, 곧바로 움츠러들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두려웠고, 나에게는 애초에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대를 해서 상처를 받느니 나는 스스로 그 관계를 파괴해버리는 쪽을 택했다. 상대가 다가오면 내쪽에서 거리를 두고 상대를 피했다.


한 번은 알고 지내던 여자아이 하나가 술을 먹고 내 앞에서 울었다. 나는 다음날 전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행동했다. 불행히도 그 아이는 내가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 중 하나였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혐오의 대상인 내가 상처를 받는 것은 상관없었지만 타인이 나로 인해 상처를 받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타인으로부터의 사랑을 원하고 있었고, 가능하다면 나 자신도 타인을 사랑하고 싶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경우라면 내가 사랑하는 타인이 나를 사랑해 주는 것이라는 것도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뒤틀린 욕망의 덩어리인 그 두꺼비는 내가 정상적인 사랑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나는 아무에게도 그 뒤틀린 욕망을 드러내지 않았다. 감정의 노출을 최소화하고 내 주변의 타인에게 어느 선까지는 친절하고 친밀하게 대하려 노력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지 않는 한도 내에서였다.


하지만 나에게도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이유가 필요했다. 모든 시작은 거기서 부터일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 내가 먼저 타인을 사랑하면, 그중에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정상적으로 사랑이라는 개념을 형성시키지 못한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를 쳐다보고 있는 두꺼비의 불룩한 두 눈이다.


때때로 나는 이런 장면을 상상한다. 어딘가의 적당한 호텔 침대 위에 내가 누군가와 나란히 누워있다. 우리는 서로가 사랑하는 사이인지 아닌지는 알지 못한다. (사실 그건 중요하지도 않다.) 다만 우리는 지금부터 매우 재미있는 일을 할 것이다. 서로의 깊은 곳에 손을 쑥 집어넣어서 눈이 불룩하고 등에 혹이 잔뜩 난 엄청나게 못 생긴 두꺼비를 꺼낸다. 서로의 두꺼비를 손에 올려놓고 무게를 재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그 못생긴 눈을 쳐다본다. 그리고 두꺼비 두 마리를 침대에 내려놓는다. 그 두꺼비 두 마리는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침대에서 마음껏 뒹군다. 머리 끝에서 꼬리 끝까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마구 뒹군다. 나와 그녀는 그 두꺼비 두 마리를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이제 우리 차례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아마도 외로움이라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늘 같은 날을 따뜻하다고 말하겠지.


나는 차가운 강을 건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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