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끄럼타고 대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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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짓말의 거짓말

남중 남고를 나왔다. 교회를 다니거나 학원을 다니지도 않았기 때문에 6년의 시간 동안 또래의 여자를 볼 수 있는 기회가 극히 적었다. 그나마 중학교 때는 전교에서 성적이 가장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좀 노는 친구들이 타 지역 혹은 타 학교의 여자애들과 미팅을 할 때 가끔 불러주기도 했었다. 그 무리 속에서 나는 굉장히 이질적인 존재였다. 살짝 과장하자면 동물원에 있는 우스꽝스럽게 생긴 어떤 멸종위기종 같은 느낌이랄까. 싸움도 잘하고, 잘 놀고,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여자도 잘 따먹는 그들에게 나는 전혀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그들의 풍부한 인맥에 속한 특별한 컬렉션 정도였을 거다. 하지만 14살이었던 내게 동물원이니 컬렉션이니 하는 자각은 없었고 녀석들 덕분에 여자들과 히히덕거릴 수도 있고 좋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영화 킹콩에서는 미모의 여주인공이 킹콩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지만 현실은 그냥 동물원의 원숭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4명의 여자 아이 중 가장 예쁜 애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남자 무리의 우두머리와 같이 다녔다. 그 예쁜 애는 모두 같이 있을 때 가끔 나와도 눈이 마주치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첫 만남 후 서너 달이 지나자 자연스레 그들과는 소원해졌고, 이후에는 남고에 진학했다.


수능을 망치고 적당히 점수에 맞춰 서울에 있는 한 대학의 영문과에 들어갔다. 영문과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취업 준비를 하며 자소서를 쓸 때는 다음과 같이 썼다.


"중학생 시절 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텍스트의 80~90%는 알파벳, 영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말과 글을 평생 다루고 살 거라면 영어를 알아 두는 편이 무슨 일을 하든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4년 당시만 해도 영문학과에는 여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학교 이름도 여자 이름 같았던 모교의 영어학부에는 그해 여자 100명, 남자 20명이 들어갔다.


6년 만에 여자가 넘치는 환경에 놓이게 되자 나와 내 몸의 부끄럼 세포들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마치 250만 년을 지구에서만 살아온 인류가 환경 파괴로 인해 제8 은하에 있는 새 행성을 개척하고, 지구와 대기질이 비슷하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입증한 뒤에, 처음으로 우주복을 벗고 새 행성의 공기를 호흡하는 것 같았다.


오티를 하고, 개강 파티를 하고 아는 얼굴과 이름들이 생기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수없이 마주치고 가끔은 밥을 같이 먹기도 해야 하는 이 머리긴 짐승들 속에서 어떻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태연한 척할 수 있는가가 문제였다. 내 몸의 부끄럼 세포들이 새 행성의 공기에 적응할 때까지 가능한 한 이들과는 접촉을 피하기로 했다. 수업을 들으러 가거나, 등하교를 할 때 저 멀리서 아는 여자애의 얼굴이 보이면 나는 가던 길을 건너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마주쳤을 때 어색하게 인사를 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행성의 머리 긴 짐승들은 영악했다. 개중에는 나의 부끄러움을 눈치챈 녀석도 있었다. 3명으로 구성된 한 여자애들의 무리는 사냥감을 발견한 고양이처럼 나를 놀림거리로 삼았다. 그들은 내 팬클럽을 자처하며 내게 '안녕'을 남발했다. 저 멀리서 나를 발견하면 뛰어와서 내 이름에 강한 악센트를 주면서 "XX야 안녕!"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하면 동물원의 원숭이보다 더 재미있는 구경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절부절못하며 나는 그들에게 어색하게 '어... 아... 아... 안녕...?'하고 땅이나 하늘을 쳐다보곤 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부끄럼증은 극복했다. 이제는 길에서 아는 여자를 만나도 못 본 척하고 지나칠지언정 가던 길을 건너서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삼십 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넌 얘기할 때 사람 눈 좀 쳐다보면서 얘기해!"라는 지적을 왕왕 듣는다. 사람의 눈을 쳐다보지 않는 습관은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는다. 이것은 어쩌면 내가 여자에게 부끄럼을 타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 큰 사람, 혹은 원숭이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부끄럼을 타지만 나는 동시에 매우 대범하기도 하다. 식당에서는 내가 먹던 된장찌개에서 머리카락이 나와도 주인아주머니 모르게 머리카락을 건져내고 그냥 먹는다. 된장찌개에서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나온 것도 아니고 호들갑 떨 일은 아니지 않은가, 하고 그냥 넘어간다. 하지만 가끔 누군가와 같이 된장찌개를 먹는데 일행 중 한 명이 아주머니를 큰 소리로 불러서 내 된장찌개에서 나온 머리카락에 대해 아주머니를 나무라면 뭔지 모를 죄송함과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그 일행은 분명 내 친구이거나 지인일 텐데 낯선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 모습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나라도 내 일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일일 경우에는 이상하리만치 대범해지기도 한다. 부끄러운 나 자신을 위해 질문을 하거나, 불평하는 것은 어렵지만 어쩐지 남의 일이 되면 용감해진다.


가령 대학시절 내가 한국어 도우미를 했던 태국인 여자애 하나가 내게 도움을 청했던 적이 있다. "외국인인데 은행 계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질문을 받은 나는 바로 알아보겠다고 답하고, 한국은행의 공식 홈페이지에 "외국인 친구가 있는데 은행계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하고 질문을 올렸다. 얼마 뒤 내 질문에 친절하고 공무원 마인드 넘치는 댓글이 달렸고 그 댓글은 "한국은행은 대한민국 정부의 중앙은행으로 개인 은행 계좌를 개설해 주지 않습니다. 은행 계좌는 시중은행에 가서 만드시면 됩니다"뭐 이런 식의 댓글이 달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30년을 꾸준히 멍청하게 살아오면서 했던 베스트 오브 베스트 멍청한 짓 탑 텐 안에 드는 멍청한 짓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도 멍청함은 대범함을 유발하고 있다.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상 또래에 비해 매우 자주 기업의 고위직, 정부의 고위 관료 등을 만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눈다. 사실상 같은 조직 안에서라면 내 나이 또래가 다이렉트로 말도 걸기 어려운 사람들이지만 이들을 만나서도 뚫린 입이라고 아무렇게나 지껄인다. 물론 예의가 없거나 버릇이 없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직위나 직책에 짓눌려 쫄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냥 뭐 나랏돈 받고 국가의 미래를 바꾸는 그림을 그리거나 욕 나올 정도로 많은 돈을 받고 중요한 결정을 하는 나와는 상관없는 아저씨라고 생각하면 편해진다.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도 일단은 나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닌 이른바 사회적 정의니 대의니 이런 걸 내세우고 있으므로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7년째 이 일을 하면서도 대의니 정의니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하 시발, 내가 이러려고 기자 했나'하는 생각을 훨씬 더 많이 한다. 어쨌든 일을 할 때는 내가 나 자신이 아니라 기자라는 가면을 쓰고 역할극을 한다고 생각하면 대범해질 수 있다.


여자가 내게 부끄러움을 유발하는 것은 내가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돈 많고, 직위가 높은 아저씨가 내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하는 것은 내가 그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상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타인이 내게 상처를 입힌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나는 내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상처 받기로 한 사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만이 내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부끄러움과 대범함도 그렇다.


*수요 산문회(수산회) 두 번째 글쓰기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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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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