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 펀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언짢음

by 거짓말의 거짓말


가끔씩 무언가를 혹은 무언가에 대해서 참을 수 없다, 라는 느낌을 받는다. 어떤 감정이나 느낌 자체를 견딜 수 없거나, 어떤 행동이나 일을 하지 않으면 온전하게 나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까지 생각될 정도로 강한 충동이 나를 사로잡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라면 그 참을 수 없는 무언가를 내가 할 수 있는 경우다. 간단하게 그 일을 한다. 거기서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된다. 가령 지금처럼 모니터의 커서를 보면서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상당히 과격한 SM의 포르노 영상을 틀어놓고 보는 것, 혹은 정말로 죽은 듯이 잠을 자는 것과 같은 경우다. 하지만 문제는, 보다 많은 경우에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것과 비슷한 일을 하고는 참아 내거나, 그 감정이 사라질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곤란한 경우라면, 역시나 나 자신에 대해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는 경우다.


때때로 나 자신에 대해서 정말이지 참을 수 없을 때가 있다. 과거 어느 시점의 미숙했던 나 자신에게, 혹은 아직도 여전히 그때와 다를 바 없는 지금의 자신에게. 가끔 아무 이유도 없이 그런 느낌이 솟구쳐 오르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나와 다른 누군가와 어떤 이야기를 나눈 후이다. 모든 대화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어떤 대화들은 내가 의식적으로 피해오거나 무시해왔던 진짜의 나 자신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들은 그들의 말을 통해 오직 외부를 향해서만 열려있던 내 시야를 억지로 끌어내어 밖으로 뽑아낸 후, 다른 방향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경우에 어떤 이는 단지 그곳에 나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나를 그렇게 만든다. 그 사람은 내게 어떤 강요를 하거나, 많은 말을 건네지 않고도 나 스스로 내 안구에 손가락을 집어넣도록 한다. 내 시야를 뽑아 나 자신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에게 내가 어떻게 비치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동안 외면해 왔던 -직시하는 것을 피해오거나 굳이 의식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레 시선을 두지 않았던- 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지금의 나 일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분노를 느끼기 시작한다. 거울을 보거나 사진을 찍는 것마저도 상당히 꺼려하는 나에게 진짜의 나 자신을 바라보게 만드는 일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지금 그들과, 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소중한 시간과, 대화의 기회를 내게 준 그들과, 그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 동안 나 자신을 향한 감당 할 수 없는 그 격렬한 분노의 감정을 그럭저럭 ‘두 개의 평행한 선’이라는 하나의 단순한 이미지로 구체화시킬 수 있게 된다.


페러렐 월드. 평행의 우주. 지금과는 다른 현실이 지금의 현실과 평행하게 공존하고 있다는 이론. 그리고 지금의 현실과 다른 현실의 공간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 두 현실은 만나는 일 없이 평행선을 그리며 다른 미래로 계속해서 나아간다. 나 자신에 대해서 참을 수 없게 된 나는 이런 상상을 한다.


페러렐 월드에 존재하는 한 현실의 선의 각도를 약간만 구부리면 그 선은 다른 현실의 선과 어느 부분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럼 나는 그 세계에 들어가서 그 세계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를 찾아다닌다. 거리에서 우연히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렇게 한동안 찾아다닌 후에 나는 마침내 그 녀석을 발견하게 된다. 침착하게 녀석에게 다가가 거리를 좁히고 적당한 거리가 되었을 때 그 녀석의 눈썹과 눈썹 사이, 정확히 코를 겨냥해서 있는 힘껏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린다. 주먹을 통해 녀석의 부드러운 코뼈가 박살 나고, 콧물과 침, 피가 뒤섞인 끈끈한 액체의 뜨뜻한 감촉이 전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녀석은 쾅하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머리부터 콘크리트 바닥으로 뻗어 버린다. 뻑뻑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손가락 사이로 녀석의 피와 침과 타액이 섞인 그것이 풀처럼 끈적거린다.


나 자신에게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리는 것. 나 자신에게 참을 수 없게 되었을 때는 정말이지 그렇게 하고 싶어 진다. 있는 힘껏 펀치를 날려서 녀석의 안면을 박살 내 버리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현실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절대로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릴 수는 없다. 굳이 번거롭게 또 다른 나 자신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서 생기는 것이다. 다른 펀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팔을 곧게 펴고 온몸의 체중을 앞발에 실어서 최대한의 힘으로 또 다른 나 자신에게 스트레이트를 꽂아 넣는다. 그런 상상을 하면 어느 정도는 자신에 대해 참을 수가 있게 된다.


만약 내가 한가롭게 길을 걷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또 다른 나의 습격으로 내 코뼈가 박살나 버린다면? 굳이 억울하다거나 화가 날 것 같지는 않다. 내 쪽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또 다른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다만 그렇게 되면 망신창이가 된 얼굴로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며 생각할 것이다.


‘왜 멍청하게 멍하니 길을 걸었던 거지, 나는. 적어도 녀석이 주먹을 뻗는 순간에 같이 주먹을 뻗어서 녀석에게도 충분히 크로스를 날릴 수 있었는데. 이런 병신.’


이제부터라도 만약 거리에서 또 다른 나와 마주치게 된다면 나는 내 오른쪽 주먹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녀석과의 거리를 좁혀 나갈 것이다. 언제라도 스트레이트 펀치를 먼저 뻗을 수 있도록 준비하면서.


하지만 어찌 되었건 간에 현실에서 나 자신에게 스트레이트 펀치를 꽂아 넣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고, 나 또한 내 오른손을 스트레이트 펀치를 위한 용도로 쓰기보다는 누군가의 머리를 쓰다듬는 용도로 쓰는 편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재미있는 사실은 ‘누군가는 나를 참아주었으면 하고.’ 바란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다시 내 오른 주먹을 바라본다.


2008년 4~5월. 무슨 이유인지 나는 라깡의 거울 단계 이론을 배우는 영문학 수업의 발표에 앞서 위의 글을 같은 반 수강생들에게 참고자료로 나눠줬다.

keyword
이전 23화겁쟁이를 위한 상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