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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짓말의 거짓말 Aug 18. 2020

첫사랑 온천 by 요시다 슈이치

16p 

예약까지 하고 올 만한 가게는 아니지만, 무심히 들른 커플이 이런 가게가 있어 다행이라고 말할 정도는 된다고 자부했는데. 


45p 

"나도 나름대로 당신에게 행복을 주고 싶었어." 

"그러면…"

시게타는 뜨거운 탕 속에서 벌떡 일어섰다. 쥐고 있던 타월이 탕 속에 떨어져 천천히 퍼지면서 발밑으로 가라앉았다. 

"행복한 순간만을 이어 붙인다고 해서 행복한 건 아니야." 

아야코가 말했다.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야코는 아무 말 없이 탈의실로 사라졌다. 

시게타는 탕 속에 우두커니 선 채로 다리 밑에 가라앉은 타월을 발로 찼다. 마치 꿈속에서 걷고 있는 것처럼 느릿한 움직임. 출렁인 물이 파도가 되어 넘친다. 꿈꾸었던 생활을 겨우 손에 넣었는데, 그곳에 있어 주길 가장 원했던 여자가 없다. 마치 그림을 움직여 맞추는 퍼즐처럼, 아무리 애를 써도 한 곳은 비게 마련이다. 빈 곳이 있기에 움직일 수 있는데, 그 빈 곳 때문에 완성되지 못한다. 


55p

"내 딸이긴 해도 이 아이, 어려서부터 하도 어수선하고 수다스러워서, 음..., 조연 타입이었다고 해야 하나." 

(중략) 

"왜 그러니? 아이나 마키 같은 네 친구들은 모두 얌전하고 귀엽잖아. 그 옆에서 그야말로 조연처럼 수선 떨며 떠들어 대는 게 바로 너잖니." 

어머니의 설명을 듣자 그 모습이 금세 떠올라, 쓰지노가 웃음을 떠뜨렸다. 

"하하! 조연이라니 대단하네."

쓰지노의 웃음에 와카나가 노려보며 말했다. 

"뭐가 그렇게 웃겨? 그 조연이랑 결혼하는 자기도 조연 아니야!"

"하하! 정말이네. TV 드라마에 자주 나오잖니. 주인공 부부 옆집에 살면서 부부 앞에 시시콜콜 참견하는 부부 말이야." 한껏 들뜬 어머니도 웃음을 터뜨렸다. 


65p

서로 한눈에 열렬한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피차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너무 오래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무심코 버릇이 나왔는지, 교제에 점점 가속도가 붙어 양쪽 모두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물론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과는 조금 성질이 달랐다. 사랑이 서로 마주보고 끈끈한 눈빛을 나누는 관계라면, 쓰지노와 와카나는 나란히 서서 천천히 걷기 시작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점점 걸음이 빨라지더니 급기야 달리기 시작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상대에게 지지 않기 위해 전력 질주하고 있는 상황에 가까웠다. 


102p

"그래. 좋은 여관에 묵자." 

"맛있는 음식도 먹고." 

"응, 맛있는 것도 먹고..."

거기서 잠시 가즈미가 입을 다물었다. 

"왜 그래?"

"응. 아니야. 그저..."

"그저?"

"그저, 뭐랄까, 그렇게 배려하지 않아도 되는데."

가즈미는 그렇게 말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아니, 전파 탓인지 웃는 것처럼 들렸다. 

"뭐가 배려야? 누가 배려까지 하면서 바람을 피우냐?"

유지가 그렇게 말하자 "그야 그렇지만" 하며 가즈미가 웃었다. 이번엔 분명 웃는 목소리였다. 서로 누군가를 배신한 사이인데, 그 배신자들이 어느새 서로를 배신할까 두려워 헤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169p

"첫 남자가 너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첫 남자라는 건 다음도 있다는 거네." 

겐지가 농담을 던지며 마키의 몸을 간질이자 마키는 비명을 질러 대면서 "없어. 절대 없어!" 하고는 이불 속으로 도망갔다. 

도망가는 마키에게 물었다. 어땠냐고. 절대 물어선 안 되는 질문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묻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었다. 

"뭐가?"

마키가 딴청을 부렸다. 

"그러니까..."

겐지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잠시 망설였다. 

"남자의 몸은 딱딱하구나, 그런 생각했어." 마키가 말했다. 

"그게 감상이야?" 겐지가 웃었다. 

"그럼 너는 어땠어?" 마키가 물었다. 

"맞아, 여자 몸은 굉장히 부드럽구나, 라고 생각했지." 

사실 처음 안았을 때 부서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만큼 마키의 몸은 부드럽고 뜨거웠다. 


200p

겐지가 자기 팔에서 빠져나간 마키의 몸을 겐지 쪽으로 돌렸다. 

"있잖아, 왠지 남자와 여자는 시작부터 어긋나는 것 같아. 여자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하나에만 몰두하고 싶어하는데 그때 남자는 축구에 미쳐 있고, 이제 남자가 겨우 여자에게 몰두하게 되면 여자는..."

겐지의 눈을 보고 있던 마키가 거기서 갑자기 말을 끊었다. 

"여자는?"

겐지가 물었다. 

"이미 변해 버린 뒤지. 사랑 하나만 생각하고 싶었는데 말이야."

마키는 겐지의 눈을 보지 않고 말했다. 마키는 희뿌연 물을 보고 있었다. 

"사랑 하나만 생각하고 싶다면 사랑만 생각하면 되잖아?"

겐지는 약간 바보처럼 말했다. 


201p

"그럼, 정말이야. 나는 아무리 봐도 바람 같은 걸 잘 피울 타입이 아니잖아. 두 여자와 12시간씩 따로따로 지내기보다 한 여자와 24시간을 쭉 보내는 게 좋아." 

"하지만 24시간을 내내 같이 있으면 좋기만 한 건 아니잖아. 싸움도 하게 되고."

"그러니까..."

겐지는 거기서 머뭇거렸다. 

"그러니까?"

마키가 얼굴을 들여다보며 묻는다.

"그러니까... 한 여자와 12시간은 잘 지내고 12시간은 싸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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