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연히 알게 됐다. '거짓말의 거짓말'은 요시다 슈이치라는 일본 작가의 소설 제목이기도 했다. 브런치 계정을 만들고 별명을 정할 때 가장 먼저 고민했던 말은 '거무철(擧無鐵)'이었다.
흔히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는 과정을 '철이 든다'는 말로 표현하는데 '거무철'은 '철이 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어감이 낯설어서 잘 기억에 남지 않는 말이기도 하고 듣는 사람도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조악한 조어라고 생각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수필을 쓰자니 내 사생활이 나올 것 같아 부끄럽고, 그렇다고 소설만 쓰자니 상상력이 빈곤하고 해서 적당히 소설과 에세이를 함께 써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거짓말의 거짓말'이 떠올랐다.
소설은 픽션, 즉 거짓말이고 수필은 논픽션인데 거짓말의 거짓말이 픽션이 되는 거니까, 라는 생각이었다. 소설이란 장르는 참 편리해서 실재라도 작가가 소설이라고 잡아떼도 되니 참 좋다.
그런데 오늘 보니 '거짓말의 거짓말'은 내가 전에 읽은 소설의 제목이었다.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 인줄 알았는데, 조금 실망이다. 쳇.
요시다 슈이치의 몇몇 책은 정말 좋아하지만 공교롭게도 '거짓말의 거짓말'의 책 내용은 지금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거짓말이 아니고 참말로.
아래는 2013년 읽은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거짓말의 거짓말' 부분.
65p
또 남자라면 누구나 그렇듯 자신은 아버지보다는 더 큰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품게 마련이다.
66p
젊었을 때에는 안락한 길은 너무 뻔한 길처럼 보인다. 그러나 더 이상 젊지 않은 나이가 되면 필사적으로 그 안락한 길로 돌아가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75p
"있잖아, 아빠가 해주는 이야기 중에서 후미키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 히토미는 조금 취했는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조그만 냉장고에서 생수 하나를 꺼냈다.
"뭔데?"
"늑대 소년 얘기라던데……."
"늑대 소년?" 츠츠이가 물었다.
"저기, '늑대가 나타났다!'고 계속 거짓말을 한 소년이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에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버림받는다는……."
"아, 그 얘기의 제목은 '늑대 소년'이 아니라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야."
"아? 그래. 그런 제목이었지."
"아마 맞을걸. 이와나미문고에서 나온 이솝우화집에 그렇게 적혀 있으니까."
"그걸 읽었어?"
"아리사 엄마랑 마찬가지지. 이리저리 공부해두지 않으면 이야기 밑천을 댈 수가 없으니까. 그건 그렇고 후미키가 그런 얘기를 좋아한다는 거야?"
"그런가 봐. '왜 그 얘기가 제일 좋아?'라고 물었더니 양이 많이 나와서 좋다고 하던데." 생수를 들고 와서 히토미가 털썩 의자에 앉았다.
"그 녀석은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아서. 원래 양은 조연인데 어쩔 수 없이 한 마리씩 이름을 붙이고 어떤 성격인지 얘기해 주거든."
120p
"초등학교 때 말이야, 반 아이들 모두에게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어."
그녀가 갑자기 이런 말을 시작한 것 역시 여기서 캔 맥주를 사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경쾌한 목소리는 쿵하고 떨어진 캔 맥주 소리만큼 무겁게 들렸다.
"무슨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게 됐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어느 날 갑자기 누구도 말을 걸어주지 않는 거야."
"분명히 네가 귀엽게 생겼기 때문일 거야. 다른 여자들이 질투한 거 아냐?" 자동판매기에서 캔 맥주를 꺼내면서 말했다. 그 등에다 대고 "나, 당신이 그렇게 말할 때가 좋아"라고 그녀가 중얼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나는 내가 이렇게 말할 때가 싫은데'라는 대답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