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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말이다, 아무리 성적이 좋고 멋진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얼굴이 못생겨 여자의 관심을 끌 수 없다면 모두 허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에게 무시당한다는 사실 앞에서는 그 아무리 대단한 말이라도 허망한 게 아닌가. 다른 모든 것이 훌륭하지만 괴상망측한 얼굴을 가진 사람에게 '당신은 여자에게 인기가 없어'라고 속삭여주는 것만큼 통쾌한 일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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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우리 집 가난하지?"
"가난뱅이 놀이를 하고 있을 뿐이아."
"그걸 평생 계속하는 걸 가난하다고 하는 거야."
"잔소리 말고 먹기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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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자란 사람이 왜 불행한 척하고 싶어하는 걸까. 불행한 것과 비교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행복을 확신할 수 없다는 건 사실은 볼 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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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찌꺼기가 지면으로 가라앉는 조용한 한때. 무엇인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물론 우에구사와는 달리 그것이 어떤 종류의 감정인지 설명할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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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아버지가 없어. 왜냐하면 말이야 어머니가 너무 닳아빠진 여자이기 때문이야. 그러나 그런 말로 그녀를 표현하는 건 좋지 않다고 배웠어. 사랑에 약한 여자라고 불러야 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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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전화도 걸지 않고 모모코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밤중에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저녁 공기가 여름의 마지막을 알리고 있었다. 그것을 그녀에게 아릴고 싶어졌던 것이다. (중략) 공기는 가을이지만 그림자는 아직 여름이라는 걸 느끼는 순간, 모모코에게 그걸 전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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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여자애들은 섹스 경험이 별로 없으니까 모르는 거야. 신경이 하반신까지 가지 않아. 그애들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아주 싫은 얼굴을 하지. 자신들은 순수하다고 생각하고 싶은 모양이야. 플라토닉한 사랑이라는 것도 물론 있겠지. 그렇지만 그건 상대를 그리워하는 감정을 지속시키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욕구불만이 불러일으키는 쾌감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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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속에서 오기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릴 때부터 상대가 분노하면 묘하게도 더 냉정하게 그 사람을 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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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의 가치관은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만들어내는 모든 세상의 편견을 깨부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예전부터 제일 싫어했던 게 제삼자가 내뱉는 '역시 그렇지'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이론을 만들어왔다. 그것은 '나는 나다'라는 거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가 되지 않겠다는 결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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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에게 있어 귀중한 것은 병이 별것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주위의 무관심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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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왜일까. 감기에 걸렸기 때문이다. 열에 들떠서 마음이 자연스럽게 반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슬픔이란 건강한 자의 특권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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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노 마이코는 문장을 또박또박 읽다가 교사가 발음을 교정해주자, 볼에 손가락을 갖다대며 곤경에 빠졌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조금도 주의를 흩트리지 않는다. 남학생들은 한숨을 쉬며 야마노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들의 얼굴에는 아으, 예뻐 죽겠어! 라고 씌어져 있다.
그러나 내게는 그 귀여운 몸짓 하나하나가 모두 손님을 끌려는 고도의 기술처럼 보였다.
나는 그녀 곁에 다가가 귀에다 대고 어릿광대, 라고 속삭여주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철봉에서 떨어진 주인공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냉소를 흘리며, 일부러 그런 거 아니냐고 경고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이 생각난다. 우등생인 주인공은 눈에 띄지 않게 날카로운 시선으로 자신을 꿰뚫어보는 존재에 두려움을 느낀다. 나는 교실을 그 소설의 무대로 상상해보면서 야마노를 어릿광대 같은 그 소설의 주인공 같다고 생각했다.
166p
인간에게는 시선을 받아들이는 안테나가 붙어 있다. 타인의 시선이나 자기 자신의 시선을 받으면 사람은 반드시 아부라는 독을 생산해낸다. 나는 그 독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지를 생각해보아야만 했다.
184p
자신의 몸에 남아 있는 타인의 흔적과 위력이란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야 비로소 알게 된다는 걸 나는 새삼 느꼈다.
216p
"어때, 도키다. 선생 피 맛이?"
"따뜻하면서도 미끈미끈하고, 이상한 맛이 나요."
"그것이 바로 살아 있다는 거야."
(중략)
"살아 있는 인간의 피에는 맛이 있고 따뜻하기도 하지."
"그럼 죽으면 맛이 없어지는 거에요?"
"그렇지. 차갑고 아무 맛이 없는 건 죽은 인간의 피야."
(중략)
"그러니까 죽고 싶지 않으면, 차갑고 맛이 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야. 언제나 살아 있는 피가 몸속을 흘러야 하는 거야."
223p
"그거 좋지, 좋아. 그렇지만 히데미, 바보 취급한다는 걸 상대에게 표시 내지 말고, 동정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그런 쪽이 시끄럽지도 않고 상대에게 자극도 줄 수 있을 텐데."
227p
아카마 히로코는 급식이 끝날 때쯤이면 일어서서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빵 남긴 사람은 나를 줘. 우리 집 마당에 날아오는 새에게 줄 거니까, 협조해줘."
그러면 모두들 식판을 돌려주기 전에 남은 빵을 히로코의 책상에 놓아두는 것이었다. 잠깐 사이에 히로코의 책상에는 빵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중략)
"고마워. 너희들 덕분에 우리 집에 오는 새들은 항상 배불리 먹어."
232p
악의를 가진다는 건 그 악의를 자각했다는 걸 뜻해. 자각했기 때문에 버릴 수도 있어. 그렇지만 그런 생각도 없이 한다는 건 둔감한 거야. 현명하지 못했어, 이번에는. 할애비 말 알아듣겠니?"
238p
어린아이는 때로 윗사람에게 비굴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어린애다움이라는 아름다운 말의 조건 중 하나다. 오쿠무라는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는 아이를 보면 매우 신경이 거슬렸다.
254p
"그애를 불쌍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거야?"
"모든 사람은 다 제각기 동정을 받을 만한 데가 있는 거야. 너를 보고도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그 사람이 너에게 불쌍하다고 말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니?"
"절대로 싫어!"
275p
세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거의 모든 가족은, 억압을 기반으로 하여, 가족의 개체가 더 넓은 사회에서 이겨나갈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가족사회는 성을 억압하고, 상상력에 틀을 부착하여 일탈을 방지한다. 그것이 가족의 사랑(?)이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