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p
이렇듯 모두가 싯다르타를 사랑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그는 기쁨을 주었으며, 모든 사람에게 그는 즐거움의 원천이 되었다.
그렇지만 싯다르타 자신은 스스로에게 기쁨을 주지 못하였으며 스스로에게는 즐거움의 원천이 되지도 못하였다.
19p
"그대의 영혼이 온 세상이니라."라고 거기에는 적혀 있으며, 또한 인간은 잠을 잘 때, 깊은 잠에 빠졌을 때,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세계에 몰입할 수 있고, 아트만 속에서 살 수 있다고도 적혀 있다. 그 시구들에는 경탄을 금할 수 없는 놀라운 지혜가 쓰여 있으며, 가장 지혜로운 현인들이 모아 놓은 온갖 지식이, 마치 꿀벌들이 모은 꿀처럼 순수하게, 마법의 언어로 적혀 있다.
26p
"너는." 아버지가 말하였다. "숲속으로 들어가 사문이 되어도 좋다. 네가 숲속에서 열락을 얻거든, 와서 나에게 열락을 가르쳐 다오. 네가 환멸을 느끼게 되면, 다시 돌아와 우리 함께 신들께 제사를 올리자꾸나."
29p
싯다르타 앞에는 한 목표, 오직 하나뿐인 목표가 있었으니, 그것은 모든 것을 비우는 일이었다. 갈증으로부터 벗어나고, 소원으로부터 벗어나고, 꿈으로부터 벗어나고, 기쁨과 번뇌로부터 벗어나 자기를 비우는 일이었다. 자기 자신을 멸각하는 것, 자아로부터 벗어나 이제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닌 상태로 되는 것, 마음을 텅 비운 상태에서 평정함을 얻는 것, 자기를 초탈하는 사색을 하는 가운데 경이로움에 마음을 열어 놓는 것, 이것이 그의 목표였다.
34p
"침잠이란 것이 무엇인가? 육체를 떠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단식이란 무엇인가? 호흡을 멈춘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아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며, 그것은 자아 상태의 고통으로부터 잠시 동안 빠져나오는 것이며, 그것은 인생의 고통과 무의미함을 잠시 동안 마비시키는 것이야. 이러한 도망, 이러한 잠시 동안의 마비는 소몰이꾼도 여인숙에서 쌀막걸리 몇 사발이나 잘 발효한 야자유를 마시고 취하면 겪는 일이네."
35p
"그런데 말이야, 고빈다, 우리가 올바른 길을 걷고는 있는 것일까? 우리가 도대체 인식에 접근하고는 있는 것일까? 우리가 도대체 해탈의 경지에 접근하고는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러니까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상상하였던 우리가, 혹시 윤회의 수레바퀴를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안에서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37p
오 고빈다, 나는 '인간은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위하여 오랜 시간 노력하였지만 아직도 그 일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어. 우리가 '배움'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오, 친구,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앎뿐이며, 그것은 도처에 있고, 그것은 아트만이고, 그것은 나의 내면과 자네의 내면, 그리고 모든 존재의 내면에 있는 것이지. 그래서 난 이렇게 믿기 시작하였네. 알려고 하는 의지와 배움보다 더 사악한 앎의 적은 없다고 말이야."
55p
당신은 죽음으로부터의 해탈을 얻으셨습니다. 죽음으로부터의 해탈은, 당신이 그것을 얻기 위하여 나아가던 도중에 당신 스스로의 구도 행위로부터, 생각을 통하여, 침잠을 통하여, 인식을 통하여, 깨달음을 통하여 얻어졌습니다. 그것이 가르침을 통하여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세존이시여,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해탈은 가르침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닙다, 바로 이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세존이시여, 당신은, 당신이 깨달은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아무에게도 말이나 가르침으로 전달하여 주실 수도, 말하여 주실 수도 없습니다. 도를 깨달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살고 악을 피하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토록 명백하고 이토록 존귀한 가르침이 빠뜨리고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세존께서 몸소 겪으셨던 것에 관한 비밀, 즉 수십만 명 가운데 혼자만 체험하셨던 그 비밀이 그 가르침 속에는 들어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73p
이 모든 것은 예전에도 항상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여태 그것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런 것에 끼어든 일도 없었다. 이제 그는 그런 것에 끼어들었으며, 그 일부를 이루고 있었다. 그의 눈에 비와 그림자가 퍼져 나갔으며, 그의 마음에 별과 달이 퍼져 나갔다.
83p
"그대에게 이 말을 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대가 너무나 아름답다는 사실에 대하여 그대에게 감사드리기 위하여 온 것이오. 그리고 만약 언짢게 여기지 않는다면, 카말라여, 그대에게 나의 친구가, 나의 스승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는 바이오. 나는 그대가 도통한 그런 방면의 기술에는 아직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오."
그러자 카말라가 큰 소리로 웃었다.
85p
"오, 그 사문은 강하지요, 그리고 그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소. 아름다운 아가씨, 그가 그대를 강제로 범할 수도 있을지 모르오. 그가 그대를 겁탑할 수도 있을지 모르오. 그가 그대에게 고통을 줄지도 모르오."
"아니에요, 사문 양반, 나는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여태까지 어떤 사문이나 어떤 브라만이, 누군가가 와서 자기를 묶어 놓고 자기한테서 학식이나 경건한 믿음, 그리고 심원한 통찰력을 강탈해 갈까 봐 두려워하였던 적이 있었던가요? 아니지요. 그런 사람에게는 그것들이 모두 자기의 고유한 재산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런 사람은 그것들 중에서 오직 자기가 주고 싶은 것만을 주고, 자기가 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주기 때문이지요. 그런 거예요. 카말라의 경우도 그것과 한 치도 뜰림없이 똑같아요. 그리고 사랑의 기쁨이라는 것도 그것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지요. 카말라의 입은 예쁘고 빨갛지요. 그러나 카말라의 뜻에 어긋나게 그 입에 한번 입 맞추려고 해 보세요. 그러면 그렇게 많은 단맛을 줄 수 있는 그 입에서 당신은 단 한 방울의 단맛도 얻지 못할거예요. 싯다르타, 당신이 말귀를 잘 알아듣는 분이라면 이것도 배워두세요. 사랑이란 구걸하여 얻을 수도 있고, 돈을 주고 살 수도 있고, 선물로 받을 수도 있고, 거리에서 주워 얻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강탈할 수는 없는 거에요."
104p
그는 사람들이 어린아이나 짐승 같은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러한 삶의 방식을 사랑하는 동시에 경멸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 생각에는 그런 대가를 치를 만한 가치가 없는 것들, 그러니까 돈이나 사소한 즐거움, 하찮은 체면을 얻기 위하여 애를 쓰고 괴로워하고 늙어가는 것을 보았다.
142p
'알 필요가 있는 것이라면 모조리.'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몸소 맛본다는 것, 그건 좋은 일이야. 속세의 쾌락과 부는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이미 어린 시절에 배웠었지. 그 사실을 안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제야 비로소 내가 그것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군. 이제 나는 그 사실을 제대로 안 거야. 그 사실을 단지 기억력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나의 두 눈으로도, 나의 가슴으로도, 나의 위로도 알게 되었어. 그것을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로군!'
178p
"당신이 쓸 덤불은 당신이 직접 가져오라고요!" 아이는 입에 거품을 몰고 소리를 질러 댔다. "난 당신의 종이 아니란 말이에요. 난 당신이 나를 때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사실 당신은 감히 나를 때릴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요. 나는 말이에요, 당신이 당신의 그 경건함과 당신의 그 관대함으로 끊임없이 나를 벌주려고 하고 나를 왜소하게 만들려고 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은 내가 당신처럼 되어야 한다고, 당신처럼 나도 그토록 경건하고, 그토록 부드럽고, 그토록 현명해지기를 바라고 있는데 밀이에요. 하지만 난 말이에요, 이걸 잘 들어 두세요, 나는 당신을 괴롭히는 일을 할 거예요. 당신 같은 사람이 되느니 차라리 노상강도가 되든지 살인자가 되어서 지옥에나 갈 거란 말이에요. 난 당신을 증오해요. 당신은 절대로 내 아버지가 아니에요. 설령 당신이 열 번 이나 내 어머니의 정부였다고 해도 말이에요."
188p
싯다르타는 심지어 가끔씩 이러한 지식, 이러한 생각이 과연 그렇게 매우 높게 평가되어야 하는 것인가, 이러한 생각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혹시 생각하는 인간, 아니 생각하는 철부지인 자기의 어린애 같은 유치한 짓은 아닐까 하고 의심을 품는 일까지 있었다. 생각한다는 점을 제외한 그 밖의 다른 모든 점에서는 세속적인 인간들이 현인인 자기와 대등한 위치에 있었으며, 자기를 훨씬 능가할 때도 자주 있었다. 이는 짐승들도 불가피한 경우에는 끈질기고 확실한 행동을 취한다는 점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는 경우가 많은 것과 흡사한 일이었다.
204p
"지식은 전달할 수가 있지만, 그러나 지혜는 전달할 수가 없는 법이야. 우리는 지혜를 찾아낼 수 있으며, 지혜를 체험할 수 있으며, 지혜를 지니고 다닐 수도 있으며, 지혜로써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지혜를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네. 바로 이러한 사실을 이미 젊은 시절부터 나는 이따금씩 예감했으며, 이 때문에 내가 그 스승들 곁을 떠낫던 거야."
205p
"한 인간이나 한 행위가 전적인 윤회나 전적인 열반인 경우란 결코 없으며, 한 인간이 온통 신성하거나 온통 죄악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란 결코 없네. 그런데도 그렇게 보이는 까닭은 우리가 시간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네. 시간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네, 고빈다, 나는 이것을 몇 번이나 거듭하여 체험하였네. 그리고 시간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현세와 영원 사이에, 번뇌와 행복 사이에, 선과 악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간격이라는 것도 하나의 착각인 셈이지."
208p
'이 돌멩이는 돌멩이다. 그것은 또한 짐승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신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부처이기도 하다. 내가 그것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까닭은 그것이 장차 언젠가는 이런 것 또는 저런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리고 항상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209p
그렇지만 나는 말은 사랑할 수가 없지. 그 때문에 나에게는 가르침이라는 것이 아무 쓸모가 없는 거야. 가르침은 아무런 단단함도, 아무런 부드러움도, 아무런 색깔도, 아무런 가장자리도, 아무런 냄새도, 아무런 맛도 가지고 있지 않아. 그 가르침이라는 것은 말 이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지. 자네가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바로 이 가르침이라는 것, 바로 그 무수한 말들이 아닐까 싶어. 그 까닭은 말이지, 해탈과 미덕이라는 것도, 윤회와 열반이라는 것도 순전한 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야. 고빈다. 우리가 열반이라고 부르는 것,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아. 다만 열반이라는 단어만 존재할 뿐이지."
226p
(작품해설)
하지만 싯다르타는 아무리 각성자라 할지라도 깨달음의 순간에 체험한 것을 말이나 가르침을 통하여 전달할 수 없다는 사실, 즉 삶과 인식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균열을 인지한다. 열반은 '이성적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의 심오한 통찰 속에서 체험될 수 있는 것'임을 깨달은 싯다르타는 편력의 길을 계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