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언제나 자신이 피해자인 척하는 사람. 그들은 말한다.
"상처를 입히는 사람이 있으면 누군가는 상처를 받아.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상처를 받는 사람이 되겠어. 나는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겠어. 그러니까 제발 나를 좀 내버려둬. 내게 상처 입히지 말아달라고"
그들은 관계의 링 위에서 언제나 피해자를 연기한다. 자신은 한 번도 가해자가 됐던 적은 없다는 듯이...
하지만 착각이다. 나도 그들 중 한 명이었기에, 대충은 알고 있다.
최근에 깨달았다.
상처를 주는 일도, 상처를 받는 일도 당사자는 모르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고 고통을 주는 것이다.
악의 없는 무관심.
누군가의 악의 없는 무관심이 상대에게 얼마나 사악하게 느껴질 수 있는지 알게 됐다
A는 B에게 반했다. 하지만 B는 A에게 관심이 없다. 좋고 싫고를 떠나 B에게 A는 화장품을 사러 들어간 올리브영 매장의 캐쉬어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다. B는 사실 C를 좋아하고 있다.
B는 단지 C를 좋아할 뿐인데 A는 아파한다. B는 누구에게 상처를 줄 생각이 없었고, A도 상처를 받을 생각은 없었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우리 모두는 이 상처 게임의 일원이 된다. 누군가는 이 링위에서 자신의 입장을 선택할 수 있다. 누군가는 주어지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게 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나오지도 않은 D는 A로 인해 죽을 만큼 힘들어하고 있다. A는 지금도 자신은 피해자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A는 D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
누군가의 악의 없는 무관심, 그것만큼 무서운 게 또 있을까.
한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주인공인 아돌프 아이히만은 독일 나치 시대의 장교였다. 그는 독일 정부의 명령에 따라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유대인을 '처리'하는 일의 일선에 섰다.
홀로코스트(대량학살).
그는 광신자도 반사회적인 인격장애자도 아니었다. 단지 국가에 순응하는 평범하고 성실한 공무원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악'이란 때로 자신이 악이라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순진하고 평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악의 평범성'
누군가의 악의 없는 무관심은 때로 한 사람을 수백 번 죽일 수도 있다. 개인에 대한 홀로코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