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좋은 사람이야."
누구가에게 들으면 기분 좋은 말이다. 물론 '좋은' 앞에 주어가 '넌'이 아닌 '오빤' 이면 더 기분이 좋다. 하지만 그 후에 "하지만 남자론 안 느껴져요"나 "하지만 나랑은 안 어울려"와 같은 말이 따라오면...... 때릴 테다.
농담이고, 남들과 마찬가지로 살면서 몇 번 위와 같은 말을 들었다. 하지만 종종 생각한다. 원래부터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없지 않을까 하고.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이었나, 스스로 자각한 최초의 착한 행동은 동네에 떨어진 작은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통에 넣은 것이었다. 그때 자신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러워서 한 달음에 집으로 달려갔다.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집에 도착하니 심장이 엄청 빨리 뛰고 있었다. 하지만 일을 나간 엄마는 집에 없었다. 그 후에도 가끔 억지로 착한 일을 하곤 했는데, 그때와 같은 떨림은 없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나쁜 짓도 했다. 동네 형들과 도둑질 같은 걸 했다. 나는 망을 보는 역할이었던 것 같다. 그때도 무척 심장이 뛰었다. 어떤 선을 처음으로 넘을 때 느끼는 감정은 굉장히 강렬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물론 나쁜 짓을 한 것은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에도 어떤 종류의 선을 넘을 때는 엄마에겐 비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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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사람들은 다양한 종류의 선을 넘는다. 그 선이 법률에서 금지하는 일이라면, 그 선을 넘고, 적발되면, 처벌받는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선은 법이 아닌 도덕, 신념, 가치 등에서 비롯된다. 사람마다 다르며 그 사람의 안(내면)에서만 존재하기도 한다. 선을 넘어도 겉으로는 전혀 표가 나지 않는다.
며칠 전 '킹메이커'란 영화를 봤다. 미국 민주당 경선을 치르는 조지 클루니가 차 안에서 아내에게 "매번 선을 긋는데도 자꾸 선을 넘어. 그래도 이건 안돼."라는 말을 하는 장면이 있다.
과거 선을 넘었던 일은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 광고, (아마 사측에 유리한)노조협상을 한 것 등이다. '이건 안돼'라는 것은 경선 승리를 위해 민주당의 '톰슨'이라는 쓰레기 같은 또 다른 의원에게 지지선언을 부탁하고, 경선과 이어지는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국무총리 자리를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경선이 불리하게 흘러가고 조지 클루니는 결국 선을 넘는다. 그리고 선을 넘는 것의 명분은 '좀 더 큰 대의를 위해서'라고 합리화된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선을 넘기 전과 선을 넘은 후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선을 넘으면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살아내야 되는 삶은 이제부터 선을 넘은 후의 삶이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이고 선을 넘은 후의 자신에 대해 실망과 자괴를 느끼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받아들이게 된다. 선을 넘은 자신을 견딜 수 없다면 극단적인 선택(자살)을 하는 수밖에 없을 테니까.
나도 그렇다. 이제껏 살면서 몇 번 내가 정한 선을 넘었다. 작은 선도 있었고, 가능한 넘지 않으리라던 두꺼운 선도 있었다. 하지만 어쨌건 내가 이렇게 지금 타자를 두드리고 있는 건 선을 넘은 자신에게 익숙해져 있거나, 선을 넘은 자신을 인정했다는 거다.
무서운 것은 한 번 선을 넘어버리면 그 후부터는 그것에 매우 무뎌지게 된다는 점이다. 작은 예로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 것'을 선으로 정했더라도, 어떤 계기로 그것을 한 번 어기게 되면 그 후부터는 의외로 간단해진다. 바람을 피우는 것, 도박을 하는 것 등도 마찬가지다.
가끔 TV에서 살인, 성폭행을 하고 얼굴에 모자를 뒤집어쓴 사람들을 본다. TV 속의 그들과 내가 본질적으로 다른가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들은 나보다 여러 번에 걸쳐 다양한 선들을 넘어왔고, 이제 선을 넘는 일에는 단순히 무뎌져 버린 것뿐일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들이 했던 행동을 하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상상과 그것을 직접 행하는 것 사이에는 담배(여자)를 그냥 쳐다보는 것과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것(폭행) 이상으로 엄청난 차이가 난다.
하지만 어떨까. 법률에서 말하는 정상참작, 다시 말해 내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쳐했다거나, 내가 그 TV 속에서 나왔던 사람과 동일한 출생과 유전자, 환경에 있었다면 말이다.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을 거라고만은 장담할 수 없다.
100% 완벽한 사람과 동일한 상황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복제를 통해 동일한 개체를 2명 만들고, 성격과 이성이 성립하는 20여 년간 동일한 환경에서 자라게 하는 실험을 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 두 명을 격리해 극단적인 선택(살인, 폭력 등)을 강요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한은 말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실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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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 데로 두드리다 보니 초점이 없어졌다. 애초에는 사실 이런 걸 쓰려던 게 아니었다.
나는 원래 '나는 살면서 몇 번 선을 넘었다. 하지만 선을 넘고 후회한 적 보다 선을 넘지 않아서 후회했던 기억이 더 많다. 이런 찐따, 병신 같으니' 이런 내용을 쓰려고 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 아래와 같은 문장이 나온다.
"이것 보게, 여자와 잘 수 있는 사내가 자주지 않으면 큰 죄를 짓는 거라네. 여자가 잠자리를 함께하려고 부르는데 안 가면 자네 영혼은 파멸을 면하지 못해. 여자는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도 한숨을 쉴 거고, 자기가 아무리 잘한 일이 많아도 그 한숨 하나면 자네는 지옥행이라네!"
어느 날 술자리에서 귓속말로 "오빤 괜찮은 사람이에요." 이런 말 들어도 지옥에 가면 무슨 소용이람... 은 물론 농담입니다. 전 시방 위험한 짐승이니까요.
하늘을 우러러 여러 점 부끄럼이 많아, 오늘도 나는 노트북을 열고, 문을 잠그고, 이어폰을 끼고, 동영상을 튼다... 도 농담.
선을 넘은 사람의 머리 위에 그 사람이 선을 넘은 숫자가 나타나면 어떨까? 그리고 한번 그 숫자를 보기 위해 국회로 가보는 거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니 무조건 숫자가 높다고 나쁜 놈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진짜 나쁜 놈들은 애초에 선을 정해 놓지도 않아서 숫자가 낮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