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에 첫 연애-2화

찌질한 상상

by 거짓말의 거짓말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라서 좋아."


당시에 나는 이 말을 싫어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만난다면 굳이 대화 따위는 통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대화가 잘 통해서 상대가 나의 소울메이트니 하는 말을 들으면 그 어리석음에 속으로 혀를 찼다. 대화는 얄팍하다. 말에 상대의 영혼이 묻어 나온다고 믿는다면 큰 오산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대화는 교감이 아니라 스킬에 불과하다. 비행기 태우는 칭찬, 상대의 말에 공감해주는 척하는 리액션, 약간의 지식, 적당한 유머, 그리고 진심을 담지 않은 달콤한 속삭임. 화려한 언변은 가짜다. 말에 진심을 담으면 어눌해지고 바보 같아진다.


나는 호감이 가는 여자와는 어쩐지 대화를 잘 풀어나갈 수 없었다. 주변을 빙빙 돌다 어쩌다 의욕적인 한 수를 두면 악수였고, 악수를 만회하기 위해 다른 패를 던지면 그 패도 똥패였다.


하지만 어쩐지 밤보다는 낮에 보고 싶고 술보다는 커피를 마시고 싶은 여자, 그러니까 수컷으로서의 전투 의욕이 별로 생기지 않는 여성과는 대화가 술술 풀렸다.


소위 여자 꽤나 후리고 다닌다는 바람둥이들이 가장 자빠뜨리고 싶어 하는 여자와 이야기할 때 '이빨'을 잘 터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교양과 지성, 품위와 경험을 갖춘 어른 남자도 화려한 언변으로 여유롭고 자연스럽게 여자를 침대 위로 안내했다.


그런 걸 보면 화가 났다. 대화가 잘 통해서 좋다고 말하는 그 순진한 웃는 얼굴에 이렇게 얘기해 주고 싶었다.

"너와 대화가 잘 통하는 그 남자는 세상 모든 여자와도 대화가 잘 통할 거야." (과연 실제로 내가 이 말을 한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여자의 '대화가 잘 통해서 좋다'는 말은 남자의 '마음이 예쁜 여자가 좋아'와 같다고 생각했다. 위선적인 클리셰. 차라리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가 '키도 크고 차도 좋은데 대화도 잘 통해'인 편이 더 납득이 갈 것 같았다.


사람은 모두 비슷하다. 그렇게 착한놈(년)도 없고 그렇게 나쁜놈(년)도 없다. 그렇다면 차이가 크지도 않고 실체도 없는 '착한 성격'을 가진 사람 보다, '예쁜 외모'를 가진 쪽이 더 확실하다.


깔끔하게 정리한 손톱보다 화려한 색을 칠한 손톱에 더 눈이 갔다. 10개의 작은 사탕 같았다. 입에 넣고 굴리면 어떨까.


하얀색 브래지어, 살색 스타킹보다 붉거나 검은색 속옷에 숨어 있는 살들이 더 좋았다. '남자에게 여자는 엄마 아니면 창녀'라는 라깡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집에 가면 있는 엄마보다 후자 쪽에 더 매혹됐다. 설령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지라도 내게 없는 그 '빛'을 가진 사람에게 더 끌렸다.


그렇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빛나는 사람과 나는 잘 되지 않을 거라는 걸.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이상도 해서 가질 수 없는 것에 더 마음이 갔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 여자친구가 돼준 사람은 빛이 나기보다 나와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얄팍한 기술이나, 연기가 아닌 정말로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