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한 생각
한 때지만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했던 때가 있다. 십 대 중반의 그 나이 또래 들과 비교해도 그렇고, 내 인생을 통틀어서도 가장 열심이었다. 반 등수와 전교 등수의 숫자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한창 에너지가 왕성할 나이였지만 시험기간에 훌륭한 시디(?)를 구했다는 친구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녀석의 유혹을 뿌리치고 집으로 향하는 하교 길에 비록 보름 정도의 기간이지만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자신이 스스로도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좋은 성적을 유지하려면 열심히도 해야 했고 나름 스트레스도 쌓였다. 그래서 시험기간이면 잠깐이지만 같은 반에 있던 복학생 형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 형은 "시험기간에는 학교가 일찍 끝나서 좋아"라고 말했다. 어쩐지 시험으로부터 자유로운 형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같은 반이지만 평소에는 얼굴 보기 힘들던 야구부 친구도 시험 기간에는 언제나 출석해서 제일 먼저 문제를 풀고 잠을 잤다. 나는 야구부와 복학생 형 다음으로 문제를 풀고 같은 시험지를 대략 5번 정도는 검토했다.
지금 대학은 시험기간이다. 졸업하고 1년 넘게 백수생활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여전히 한가하다. 스트레스도 별로 없다.
시험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한창 받고 있는 대학생 녀석이 나를 보면서 '저 녀석은 시험도 안 보고, 백수라서 참 마음이 편하겠구만'하고 생각한다면 어쩐지 그건 실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복학생 형을 봤을 때보다 거의 2배나 나이를 더 먹은 지금은 그 당시 내가 했던 생각이 그 복학생 형에게는 '굉장한 실례'였구나 하고 깨닫게 됐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다들 남들이 보기엔 한가해 보여도 나름대로는 자기만의 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012년 10월 취업준비생 시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