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의 사표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해

by 거짓말의 거짓말

같은 부서 후배 한 명이 지난주에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났다. 한 두 서달 같이 있었던 거 같다. 있는 동안 특별히 잘 해준 것도 없고, 못 해준 것도 없다. 내가 누구에게나 그런 것처럼. 반대로 내게 특별히 잘 해주는 사람도 없고, 못 되게 구는 사람도 없다. 어쨌거나 '공평'한 상황이다. (공평은 내가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다.)


잠시지만 내 후배였던 그 친구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어서 떠난다'는 말을 윗사람에게 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한 때는 '글'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큰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막상 직업으로서 일종의 실용적 글쓰기를 하다 보니, 직업적 글과 내가 쓰고 싶은 글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그 괴리에 상처를 받기보단 그 두 가지의 차이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합리화하는 편을 택했다.


회사가 내게 요구하는 '하루용(one day)' 글과 내가 쓰고 싶은 '오래용(long day)' 글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역시나 세상에 고수는 많아서 하루용 글을 위한 공간(지면)에 오래용 글을 쓰는 훌륭한 동료 기자들도 많았다.


나는 그럴 때면 공간(매체의 특성) 자체가 다르니까 어쩔 수 없지 라거나, 그들이 쏟은 노력의 절대량이 나보다 월등히 많았겠거니라며 자위하곤 했다.


그렇지만 어쨌건 내게도 충족되지 않은 쓰고 싶은 욕구가 있었고, 그럴 때면 나는 온라인에 '3분 카레용' 같은 낙서를 똥처럼 쌌다.


하지만 역시나 누구나가 보는 것은 부끄러우니까, 적어도 한 번쯤 얼굴을 본 사람들만 읽을 수 있도록 공개 범위를 제한했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지만 나는 무언가를 쓸 때 대부분 그 시점에서 단 1명 정도의 독자만을 상정하고 쓴다. 실제로 그 사람이 읽을지 읽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사람이 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쓴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인 김태원이 "내가 기타를 잡은 건 내가 좋아하는 한 소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고 한 방송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그것과 비슷하다.


아마 김태원도 그 소녀 앞에서 그녀만을 위해 기타 줄을 튕기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라 생각해 본다. 그래서 김태원은 무대 아래에 그녀가 있는 날을 상상하며, 다수의 관객 앞에서 작은 공연 연습을 수도 없이 반복했을 테다. 그녀만을 위한 연주를 할 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아래 링크는 3년 전, 이 일을 시작했을 즈음에 쓴 글이다. 직업윤리에 대해 나름 그럴듯하게 썰을 풀어놨지만 그때도 결국은 이 글을 읽게 될 여자애 하나가 이 글을 보고 나라는 녀석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생각에 썼던 것 같다. 무릎에서 피를 흘리는 여자애로 상징된 그녀(내가 지켜주고 싶었던)는 지금은 물론 다른 남자랑 지지고 볶으며 잘 살고 있을 테다.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요즘은 누가 봐도 상관없는 글을 아무렇게나 쓰게 된다.


<2016 05 한 후배가 사표를 낸 즈음>


전단지와 애정과 정의에 관해

https://brunch.co.kr/@lieoflie/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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