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에 대한 단상
밖에서도 안에서도 수첩이 이슈다. 밖으로는 일명 '최순실 게이트'를 둘러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 수첩이 그렇다. 안으로는 조금 뜬금없는 선원수첩을 두고 한동안 시끄러웠다.
지난주 후배 한 명이 사표를 냈다. 기자를 시작한 지 2년이 채 안된 후배다. 그 후배는 자신의 SNS에 갓 받아 따뜻한 선원수첩 사진을 찍어 올리고는 "선원수첩을 받으니 이제야 실감이 난다"고 썼다. 기자를 관두고 뱃사람이 되겠다는 후배에게 주변의 걱정, 격려, 부러움, 의아함이 오고 갔다. 나는 "축하한다" 고만했다.
수첩은 가볍지 않다. 안종범의 업무 수첩이 그렇고 언론의 역할을 하는 PD와 기자들의 수첩도 마찬가지다. 기자수첩을 처음 받고 가장 좋았던 것은 누구에게든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기자가 되고 싶어 하는 후배가 기자의 장점을 물어보면 나는 "기자는 누구보다 멍청하지만 누구보다 똑똑한 사람에게 질문할 수 있다. 상대방은 첫 질문만 듣고도 그 기자의 바보의 단계를 1에서 10단계로 나눈 뒤 거기에 맞춰 가장 적절하게 대답해 준다"고 말한다. 이어 경우에 따라 "세상에 옳지 않거나 이상한 일이 있으면 돌을 던질 수 있고, 아주 가끔 운이 좋으면 작은 파장이 생기기도 한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펜과 수첩은 기자의 유일한 무기다.
잦은 과로와 음주, 야근 탓에 결혼 상대자로 제주 해녀보다 못하다는 말도 있고, '기레기'라는 말도 넘치지만 아직도 기자수첩을 받아 들기 위해 노력하는 후배들을 나는 많이 알고 있다. 며칠 전 수년 전에 언론사 인턴을 같이하고, 현재 기자를 지망하는 한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4년 이상 기자가 되기 위해 준비해 온 후배는 "지금도 내가 정말 기자를 하고 싶어 하는 건지, 기자란 일이 내가 생각하는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말로 위로를 건네고 전화를 끊었다.
한 후배는 기자수첩을 반납했고, 또 다른 후배는 기자수첩에 대한 열의가 식어 가고 있었다. 다음 달이면 내가 첫 기자수첩을 받은 지 만 4년이 되고, 4 기수 후배들이 회사에 들어올 것이다. 새로 기자수첩을 받을 후배에게 해줄 말도 같다.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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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자 기자수첩으로 올렸으나 '푸념'은 기자수첩이 아니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2017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