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한 생각
하루키는 과거 자신의 가난을 묘사하며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가난'이라는 표현을 썼다. 처음 읽고는 '응?' 하는 반응을 보이게 되지만 읽다 보면 과연 그렇군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역시나 훌륭한 작가다. 하루키 정도쯤 되는 사람이라면 '단발머리 소녀의 새끼발가락 모양을 한 가난'이라거나 '크리스마스이브에 혼자 먹는 식은 두부 같은 가난'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일단 써놓고 나서도 뒤에 훌륭한 설명으로 읽는 이를 설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역시나 현실의 하루키씨가 이걸 본다면 "아니, 이봐요. XX씨. 아무리 저라도 그런 말도 안 되는 비유는 무리라고요.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거 아닙니까."하고 겸손한 대꾸를 하겠지만. (물론 그가 일본말로 얘기하면 나는 전혀 못 알아들을 것이다. 어쨌든 하루키씨는 영어도 잘 해서 프로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으니까. 매너 있는 하루키씨, 혹시 만약 내게 해야 할 말이 있다면 쉬운 영어로 부탁합니다.)
어쨌거나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은 '가난'에 대한 것은 아니다. 나는 하루키씨와 같은 훌륭한 작가(일단 작가도 아니다, 그리고 그 비슷한 그 무엇도 아니다)의 발톱에 낀 때만큼도 글을 잘 쓰지 못하므로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가난'같은 멋진 비유는 쓸 수 없다. 어디까지나 합리적이고 한 번에 이해 가능한 수준 내에서(그렇다고 하루키씨의 비유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연애란 '탁구'와 같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역시나 '연애란 탁구' 이런 진부한 표현은 어쩐지 전에 이미 누군가 말했거나 썼을 것 같지만 나는 그것을 본 적이 없으므로 그냥 이렇게 계속해서 적는다. 혹시나 전에 다른 누군가가 쓴 '연애란 탁구와 같다'란 문장을 본 사람이 있다면 뒷부분은 읽을 필요가 없을지 모르니 염두해 두시길. 물론 연애란 탁구에 대한 설명이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아참, 굳이 알 필요는 없지만 한국에 연애(戀愛)라는 개념이 생긴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정확하진 않지만 내 기억에 '연애'라는 말은 개화기 즈음에서 일본에서 수입됐다고 한다. 즉 한국에서 '사랑의 행위(혹은 과정으로서)'라는 개념을 가진 연애라는 말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즉 과거의 사람들은 사랑을 느끼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았지만 '연애'자체를 하지는 않았다. 혹은 '연애'를 한다는 자각은 없었다. 적어도 과거 변강쇠와 마님은 물레방앗간에서 만나 사랑을 나누면서 '음, 우리의 '연애'는 정말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뜨거워'라는 따위의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뭐, 어찌 되었거나 물레방앗간에서 사랑의 행위를 하면서 '연애'라는 개념을 떠올릴 수 있는가 없는가는 중요하지 않으므로 이만 생략하기로 한다.
탁구란 게임이다. 즉 play의 대상이 된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play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연애는 탁구보다 조금 복잡해서 make a love 같은 말도 있지만 make a pinpong과 같은 말은 없다.
게임의 시작은 서브다. 탁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연애의 당사자가 되는 두 사람 중 어느 한쪽이 호감을 느낀 상대에게 마음을 담아 서브를 넣는다. 대개의 경우 첫 서브를 넣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거나, 먼저 좋아한 사람이거나, 상대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바람둥이이거나, 혹은 남자일 가능성이 높다. 어쨌거나 첫 서브가 들어가면 그 이후에 게임을 시작할지 말지를 정하는 것은 서브를 받는 상대방이다. 상대가 receive를 받아 공을 넘기면 거기서부터 게임이 시작된다. 서로 공을 주고받으면 그 과정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해 한동안 즐겁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첫 번째 서브의 리시브가 성공할 확률은 현실적으로 그리 높지 않다. 우선 보내는 쪽에서도 확신이 없기 때문에 주저하다 첫 서브를 넣기 쉽다. 그리고 상대가 너무 치기 쉬운 서브, 혹은 정직한 서브는 조금은 부끄러운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브에 스핀을 넣거나 상대가 조금은 치기 까다롭게 서브를 넣는 경우도 있다.
받는 쪽 입장에서도 언제 서브가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거나, 준비가 덜 됐거나, 혹은 초기 서브 정도는 그냥 보내버리고 다음 공을 기다리자 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을 수도 있다.
서브를 하는 쪽과 받는 쪽 사이의 이러한 변수들로 인해서 첫 서브의 성공률은 극히 낮다. 게다가 서브를 넣는 상황, 받는 상황이라는 것도 모두 다르다. 하루에도 몇 개씩의 서브를 여러 사람에게 날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첫 서브를 넣기까지 20년이 넘게 걸리는 사람도 있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금 내게 서브를 해온 상대방이 태어나서 평생의 첫 서브를 날리는 것인지, 아니면 1만 3982번째의 서브를 날리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역설적인 사실은 진심을 담아서 조금은 무게 있는 첫 서브를 날린 남자(일단 남자라고 해두자)는 실패할 확률이 높은 반면, 가벼운 마음으로 서브를 남발한 남자의 경우는 성공할 확률이 높다. 서브를 날리는데 익숙하지 않은 전자의 남자는 그 실패에 상처 입고 두 번째 서브를 날릴 용기를 쉽게 내지 못한다. 하지만 후자의 남자는 어차피 한 번 보낸 상대에게 몇 번 더 서브를 날리는데 주점함이 없으므로 역시나 시험 삼아 몇 번 더 날리게 되고 그러면 상대방이 리시브할 확률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서브의 구질도 마찬가지다. 첫 서브를 넣는 경우는 어쩐지 서브를 넣는다는 사실 자체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가 조금은 치기 어려운 서브를 넣게 된다. 즉, 야구에서 말하는 직구를 던지기가 힘든 것이다. 변화구를 던져서 상대가 치기 어렵게 만들어 놓고는 상대가 치지 않으면 실망해서 마운드를 내려온다. 야구에서는 볼 카운트가 두 개나 더 남아있지만, 역시나 의지를 잃어버린 투수는 남은 두 개의 공을 던져볼 생각도 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이다. (물론, 탁구는 서브를 두 번까지 할 수 있다. 야구보다 공이 하나 적다)
음. 조금 길어졌는데 어쨌거나 오늘은 아직까지 1세트의 승리, 아니 1세트의 탁구 게임도 진행시키지 못한 탁구를 굉장히 치고 싶어 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듣기로 그 남자는 탁구를 책으로 배웠다고 한다. 한 마디로 멍청이라는 뜻.
<2012 04. 27년째 솔로 시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