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해서 미안해

찌질함에 대한 참회록 Intro

by 거짓말의 거짓말

"찌질해서 미안해."


나는 오늘도 사과를 한다. '사과'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이다. 나의 찌질함이 나를 이렇게 낳아준 부모님 탓인지 내 잘못인지는 잘 모르겠다.


170cm가 안 되는 키. 누군가의 말마따나 '루저의 높이'다. 내 키가 작은 건 160cm에서 한참 모자라는 엄마 때문이다. 내 잘못이 아니라.


이 정도 '키'로는 여자의 마음의 문은 물론 몸의 문도 열기 어렵다. 일단 문고리까지는 키가 닿아야 키(key)를 넣고 돌릴 텐데 까치발을 서야 간신히 닿을 정도니까. 키가 크다고 해서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문고리의 구멍에 키를 꽂는 일 자체는 확실히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170cm가 안 된다고 모두 다 찌질한 것은 아니다. 주변만 봐도 친구 중에 키는 나와 비슷한데 가제트라도 되는 양 이 문 저 문 다 쑤시고 다니는 녀석이 있다. 과장이 얼마나 섞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키를 꽂기도 전에 활짝 문이 열리는 경우도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생각해보니 지난여름 문을 반쯤 열고 "라면 먹고 갈래?"라고 묻던 자취하던 누나에게 나는 "좀 전에 밥 먹어서 배불러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찌질함은 엄마 아빠 탓도, 내 키 탓도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왜 나는 나의 찌질함에 대해 사과하고 있는 거지. 사과를 받아줄 사람도 없는데.


이건 나 자신에게 바치는 사과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렇게 밖에 못 살아서 미안해. 나의 찌질함은 내 인생에 대한 명백한 '잘못'이며 나는 그것을 '인정'하고 있고 자신에게 용서를 빌고 있는 것이다.


찌질함에 대한 나의 참회록은 이렇게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사과해야겠다. 방금 국립국어원 표준대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찌질하다', '찌질함'이란 단어는 사전에 없는 말이다. 그 사실도 이제야 알았다. 찌질하고 멍청해서 미안해.


찌질하다는 표준어로 '지질하다'다. 첫 번째 뜻은 '보잘것없고 변변하지 못하다', 두 번째 뜻은 '싫증이 날 만큼 지루하다'이다.


“이렇게 지질해서(찌질해서)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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