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걸이와 미인의 함수

찌질한 인생

by 거짓말의 거짓말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잘 믿지 않지만 나는 내 앞을 걸어가는 여성의 걸음걸이를 보면 상당히 높은 확률로 그 여성이 미인이지 아닌지를 미리 알 수 있다. 여성의 뒷모습과 실루엣(몸매)을 보고 막연히 앞선 여성이 미인일 거라고 추측하는 것과는 다르게 내 예상은 꽤나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우연히 내 걸음걸이가 빨라서 그녀를 추월하게 되고(가끔은 우연히가 아닐 때도 있지만),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보게 되면 여지없이 내가 미인이라 예상했던 여성은 예쁜 얼굴을 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반대의 경우까지 모두 맞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맞을 거라고 생각한다. 걸음걸이를 보고 내가 미인이 아닐 거라 생각했던 여성은 대개 미인이 아닐 것이다라고 나는 믿고 있다. 어쩐지 내가 미인이 아닐 거라 예감했던 여성의 경우는 앞서 말했던 우연히가 우연히 잘 작동하지 않아서 언제나 내 걸음걸이는 그녀보다 늦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내가 걸음걸이를 보고 미인이 아닐 거라 예상한 여성들이 여지없이 나보다 빠르게(혹은 비슷하게) 걷는다는 것은 내게는 참 이상한 일인 듯여겨지지만 그게 사실이니까 어쩔 수 없다. (미인이 아닐 것 같은 경우에는 굳이 그녀를 앞지르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사람의 인생과 경험이 그 사람의 얼굴(관상)에 드러나듯 걸음걸음도 그 사람의 성격, 생활방식, 삶의 태도와 같은 것들의 축적으로 형성된다. 걸음걸이에도 그 사람만의 개성이 있는 것이다. 비슷한 체형과 몸무게를 가진 두 사람이 같은 신발을 사서 1년 정도 신은 후에 밑창을 비교해 보면 닳아있는 부분이 서로 다르다. 걸음걸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사람마다 모두 지문이 다른 것처럼 걸음걸이도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그리고 나는 한 여성의 지문을 보고 그 여성이 미래에 의사인 남편을 만나서 사모님 행세를 하고 다니게 될지, 아니면 거리의 불량배를 만나서 배를 붙이고 살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걸음걸이를 보면 그 여성이 미인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 수 있다.


걸음걸이는 옷차림이나 헤어 스타일과는 다르다. 짧은 순간에 바뀌거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옷차림이나 헤어 스타일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무의식적으로' 제공한다. 한 개인이 걸음걸이에는 그 개인의 자존감, 자신감, 자아 중심성, 타인에게 보일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태도, 그리고 자신이 미인인지 아닌지에 대한 무의식적인 자각 같은 것들이 들어있다.


프랑스 여류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가 쓴 '왕자의 특권'에는 아래와 같은 문장이 나온다.


지그리드는 아찔한 구두 굽과 상당한 양의 알코올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똑바로 걸어 지하실로 내려갔다가 비틀거리지도 않고 다시 올라와 안정된 자세로 병마개를 땄다.


소설 속에서 지그리드라는 인물은 매우 미인인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미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으며, 일상의 작은 행동과 말투, 심지어 걸음걸이에서도 그러한 사실을 드러낸다.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높은 힐을 신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그녀의 걸음걸이에는 빈틈이 없다.


'나는 미인이니까 헤픈 여자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스스로에게 엄격해져야 해.' 하는 습관적인 규율 같은 것이 깔려 있다. 모든 남성들이 아름다운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친절하며 먼저 데이트를 신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스스로가 미인이라 여기는 자각과 주변의 남자들에 의해 거듭 반복되고 확인되는 그녀가 미인이라는 사실은 그녀의 걸음걸이를 더욱더 아름다운 여성의 그것으로 만든다. 설혹 그녀가 애초에 자신이 미인이라는 자각이 없었다 할지라도, 어느 순간 그것을 의식하게 된 그녀는 그녀의 걸음걸이를 의식적으로 아름다운 여성의 걸음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그녀의 걸음걸이는 누가 봐도 아름다운 여성의 걸음걸이가 되어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여성의 걸음걸이라는 것은 짧은 순간에 노력하거나 흉내를 낸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걸음걸이는 대개의 경우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설혹 미인이 아닌 여성이 미인의 걸음을 의식적으로 따라 한다고 할지라도, 얼마간의 관찰을 통해 안목을 쌓은 사람이에게는 어색함과 이질감을 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내 예감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다. 때때로 걸음걸이를 보고 굉장한 미인이라 예상했던 여성이 의외로 평범하거나, 심지어 미인이 아닌 경우도 있다. 물론 아름다움의 기준이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에도 그녀가 미인이 아니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예측이 빗나갔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런 경우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많은 경우에 그녀는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여기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확고한 자각은 실제로 그녀의 외모가 어떻든지 간에 적어도 걸음걸이에서 만큼은 '나는 미인이고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있으며 당신이 데이트를 신청해도 쉽게 허락해주는 않을 거야'와 같은 당당한 자신감이 보여서 보는 사람으로서도 뭔가 흐뭇해진다.


걸음걸이가 미인이 여성이 내 예상대로 실제로 미인인 것은 그것대로 좋다. 하지만 역시나 때때로 이렇게 내 예상을 벗어나는 범주의 사람들을 보면 나는 모종의 인간적인 호기심과 호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걸음걸이만을 보고 "저기요, 잠시만요"하고 말을 건네본 적은 없지만.

keyword
이전 10화찌질해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