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한 인생
'She's Out Of My League'란 영화가 있다. 우리말 제목은 '내겐 너무 과분한 그녀'다. 공항 검색대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평범 이하 남자에게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는 퀸카가 반하는 내용이다. 장르는 로맨틱'코미디'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나도 별로지만, 지금 우리가 속한 사회 속에서 사람은 평등하면서 평등하지 않다. 외모, 부모의 재력, 지능, 성격, 성장환경 등에 따라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사람 자체에 '등급(grade)'이 있지는 않더라도, 이런 여러 가지 조건 변수로 인해 그(혹은 그녀)가 속한 '리그(league)'는 분명히 달라진다.
가령 겉모습. 태어날 때 주어지는 외모라는 변수를 보자. 유치원 교실에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연극을 한다. 이때 공주 역을 맡는 아이와, 왕자 혹은 난쟁이 역을 맡는 아이는 대체로 정해져 있다.
유치원 선생님이 '백설공주 하고 싶은 사람?'하고 물어본다면 대부분의 여자 아이들이 손을 들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이 '백설공주 역에 누가 잘 어울릴까?'하고 묻는다면 아이들의 손가락은 대체로 특정한 아이 한 둘에게 몰릴 것이다. 노력 여하에 상관없이 무언가는 이미 결정돼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이들이 맡는 배역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좋든 싫든,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신과 타인에게 '서로 다른 리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그리고 그 리그에는 분명히 등급이 있다. 리그 안의 인간 자체에는 등급이 없다 할지라도 말이다.
남성 간의 리그는 의외로 간단하다. 넓은 의미에서 대체로 그의 '쓰임새(useless)'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능력이나 재력, 혹은 사람을 당기는 매력 등 다양하지만 대체로 '힘'과 관련이 있다. 일반적으로 힘이 센 녀석이 힘이 약한 녀석을 내려다보는 역학 관계가 성립한다.
하지만 남성, 여성의 리그는 동일한 선상에서 비교가 어렵다. 남녀 상호 간에 상대방에게 원하는 요소가 다르기 때문이다. 남성의 등급이 1, 2, 3, 4 이런 식으로 간다면 여성의 리그는 a, b, c, d라는 식이다. 물론 남녀가 만날 때는 상위 등급 간의 결합이 일반적이다.
한 커플을 보고 사람들이 흔히 '남자(여자)가 아깝네'라고 말하는 경우라면 그들 중 어느 한쪽의 리그가 상위로 보인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동성 간의 리그는 어느 정도 객관화가 가능하지만, 이성 간의 리그는 주관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최근 문득 나는 이제껏 그 리그의 등급에 갇혀서 참도 재미없게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필요 이상 힘들었거나 손해를 봤을 수도 있었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멋대로 상대방을 나보다 상위의 리그로 올려놓고 애초에 그녀를 가질 욕심조차 부리지 않는 것이다.
간혹 그녀가 날개를 접고 내 리그로 내려와 친근하게 미소를 보여주더라도 멋진 그림을 감상하는 것처럼 바라만 볼뿐 손을 대지는 않는 것이다. 굳이 필요 이상으로 쫄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대체로 이런 메커니즘이다.
내가 좋아하는 대상은 대게 나와 다른, 혹은 내가 결핍된 부분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면 상대의 매력은 과장되기 마련이다. 그는 어쩐지 나와 다른 (상위의) 리그에 사는 사람 같다. 그 사람 앞에서 나는 자신감이 없어진다.
상위 리그에 있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내가 더 훌륭한 사람이 돼서 그 리그로 기어올라 가거나, 포기하는 것.
사냥꾼에 적합한 타입이 아닌 나로서는 이럴 때 정복욕을 불태우기보다, 사냥을 접고 포기를 하는 손쉬운 방식을 택해왔다. 그리고 나중에 후회하기를 반복하고.
그러다 문득 아, 어쩌면 나는 그간 '라면 먹고 갈래?'라는 그 멋진 제안에 '응? 나 지금 배불러서 괜찮아'라는 식으로 내 인생에 얼마나 죄를 지은 것인가, 라는 생각에 다다르자 갑자기 우울해졌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지금껏 몇 번의 기회 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 다만 내가 겁을 먹거나, 지나치게 신중한 탓에 그 기회를 알아채지 못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