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낙엽, 준비도 못하고 손을 놓아버린 은행잎에 대해
기다려 주지 않는다. 계절도 사랑도 죽음도.
주말 당직 출근길, 여의도역에서 회사로 걸었다.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기온에 은행잎이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손을 놓았다. 땅으로 낙하한 은행잎의 주검이 거리를 덮었다. 역설적이게도 아스팔트를 덮은 은행잎의 잔해층은 이불처럼 포근해 보였다.
하지만 예년과 달랐다. 은행잎의 이불은 작년보다 덜 따뜻해 보였다. 평년의 은행잎이 여물대로 여문 샛노란 빛이었다면 올해는 노란 은행잎과 함께 초록의 잎도 떨어져 있었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은행잎은 노랑의 옷으로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가지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빠진 모양이었다. 그렇게 갑작스레 가을이 가버리고 금세 겨울이 찾아왔고 은행잎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없었다. 올해는 샛노랑의 이불 대신 설익은 노랑과 초록의 이불이 검은 아스팔트를 덮었다.
시간은 은행잎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사랑도, 이별도, 죽음도 마찬가지다. 이쪽의 사정 따위야 어찌 됐건 제멋대로 불쑥불쑥 찾아오거나 떠나버린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 단지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 오늘은 아니 오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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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왕자의 게임이라는 영드를 보고 있는데 거기에서도 '오늘은 아니다(not today)'라는 대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