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작자 Sep 09. 2024

[연작시] 그대에게 12



그대에게 12



조금 지난 일이기는 합니다만

아이의 문제로 학교를 다녀왔었습니다

진실로 안전지대란 없는 것인지

점점 이성이 마비된 듯한 현실이 두렵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는 ‘용서’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진심어린 사과를 요청한 뒤 사건을 덮는데

그때에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 우리는 드넓은 그릇을 가졌으나

세상사에 깎이고 닳아 마음그릇이

‘종지’밖에 되지 않는 ‘어른’임을 말입니다


스스로 파멸할 권리는 있으나(신념에 따라 다르겠으나)

타인을 파괴할 자격은 없습니다

생각해보니 어른이란 이유로 나 또한

아이들의 싹을 매일 자르고 있었습니다

일관성 없는 잔소리, 감정에 따른 태도

뉴스에 나오는 불미스런 사건(유아)을 빼면

의식주를 해결해줄 뿐 좋은 선생님보다 못했습니다

전지가위로 가지치기를 한 것이 아니라

가지들을 무심히 잘라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번은

엄마가 없으면 어떻게 사느냐고 운 적이 있었습니다(민증에 있는 장기기증하트 설명 중에)

나는 그래도 좋은 엄마구나 싶었지만

문제는 내가 아니라 ‘밥’이었습니다

먹고사는 단순한 일이 제일로 큰 문제임을,

인생의 ‘화두’를 알고 있는 아이들이었습니다


나는 몸짓만 거대할 뿐 어른은 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어른’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몸집만 커지면 어른이 되는 것인지

취직만 하면 어른이 되는 것인지

결혼을 하면 어른이 되는 것인지

아이를 낳으면 어른이 되는 것인지

죽음을 앞둔 그날에 어른이 되는 것인지.


지난번 학교 일로 아이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울림이 됩니다

‘지켜본다는 것’, ‘기다린다는 것’

아이는 지켜보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당장 결론을 원하는, 어른과의 상반된 의견에

할 말을 잃었다가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아이는 ‘용서’의 깊은 뜻은 알지 못했어도

타고난 순수함으로 실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부모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아끼고

묵묵히 기다리는 게 아닐까 했습니다만

말을 말일 뿐,

진정으로 ‘기다려준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윽박지르며 자른 싹들을 모아 아이의 발밑에 다집니다

그러고 보니

모두가 매일(어른조차)을 싹(사회에서)이 잘리며 살아가는 듯합니다

아이와 함께 아름드리나무가 되어봐야겠습니다

아이의 열매,

나의 열매가 어떤 형태일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그대의 나무는 안녕한가요?




작가의 이전글 [연작시] 그대에게 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