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시] 그대에게 24_약속과 부담

by 김작자


그대에게 24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자아 성찰의 장場입니다

떠날 인연, 남을 사람을 떠나

그들의 마음까지 살펴야 하는 ‘혜안’은 물론이요,

그들의 변덕스런 요란에도 요지부동해야 할 ‘고요’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닌 만큼 훈련이 필요합니다


살아가다보면 무수한 약속을 하게 되고

원치 않는 약속을 강요당하기도 합니다

‘약속’은 삶을 건축해나가는 설계와 같습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라는 속언이 있듯

약속은 신중해야할 자기 자신의 ‘인격’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약속한 날이 다가올수록 몸이 불편해지기 합니다

자의건 타의건 약속이 만든 ‘부담’ 때문입니다

그날그날 기분을 만드는 것은 나의 ‘의지’이지

신체의 리듬이 크게 작용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선뜻 약속을 정했으나 이행이 거북할 때는

변명과 사정이 짧으면 짧을수록 좋습니다

뒷걱정에 대비하여 상대방의 시간을 뺏는 것은

약속의 불이행보다 더 비루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출된 습작이나 초고를 검토하다보면

연락도 없이 마감이 지켜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조언이나 원고를 봐줌에 있어

삼일 전에는 도착(원고)해야 한다는 신조가 있습니다(남의 글을 봐준다는 것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세 번 읽고, 그 깊이가 다르기 때문에 할애하는 시간까지 계산을 잡아야 합니다.)

이런(모든) 약속도 신뢰가 우선으로 되어야 합니다

제때 제출되지 못한 원고에 대한 불만은 아닙니다

예전같으면야 연락도 없이 취소되는 상황에

적잖은 감정을 허비하기도 했습니다만

이제는 그런 만남과 약속에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필요에 의한 만큼

나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성급함(게으름)이 자초한

삶의 깊이가 빠진, 예의에 대한 ‘무지’의 탄로일 뿐입니다

이 상태에서 생각을 바꾸면 상황은 역전됩니다(약속은 어느 순간 부담으로 전환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삶을 개척하는 것도 일종의 약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시간 확보는 나를 위해 쓰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불이행이 남긴 흔적은

상대방에 대한 ‘평점’을 매기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매우 귀한 본인의 ‘품격’입니다


약속에 있어 조건을 따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조건’을 내세우는 것은 그들의 우월성이 아니라

본인도 한때 인간이었음을 '자각'하지 못할 뿐입니다

약속은 수지타산을 앞세우기도 하는 미묘한 것입니다

약속의 중대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상대방의 일방적인 취소에 대응하는 자세를 바꾸면

감정에너지의 낭비는 물론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요즘 그대에게 안부를 묻지 않아 오랜만에 외쳐봅니다

“잘 지내시지요? 근래 몇 년 전 출간했던 책을 펼쳤습니다. [조선의 뒷담화]의 118페이지, 왕비의 뒷담화로 첫 번 째 주인공은 당시 ‘여주女主’라고 불리었던 문정왕후입니다. 양재벽 벽서사건부터 국부로 추대받던 요승妖僧 보우, 을사사화와 사건의 정당화를 위해 죽은 억울한 사관史官들, 아들을 대신한 정치, 정난정, 그녀의 오라비들까지 다시 보아도 정말 대단했던 권력의 여인(노예)입니다. 출간한지는 오래 되었지만 책 홍보라고 해두겠습니다. 시골 구석에 박혀 있지만 아이들이 있고, 노부모가 계시니 어찌 생각이 없겠습니까. 역사를 다루다보면 개떼들의 소란은 참으로 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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