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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시] 그대에게 58_쓰기에 관하여

by 김작자

그대에게 58_김경민



[그대에게_57]을 발행하고 5일이 지난 지금까지,

[58]에 대한 초고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 쓰지 못한 채 이 글을 발행할 것도 같습니다

초고를 잡지 못하면 초조한 마음이 생활을 해칩니다

누가 본다하면 대단치 않은 ‘연작시’ 하나로

생활까지 해치냐며 비웃을 수도 있겠으나 작가는,

하루라도 빠짐없이 ‘한 문장’과 ‘한 페이지’라도

읽고 쓰고, 고쳐(퇴고)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루를 쉰다는 것은 병가나 휴가가 아닌 이상

일을 하지 않은 무단결근과 다름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한 작가의 길은 내게,

환상과 같은 거만한 자존심만 영글게 했습니다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아닌 척,

유명한 작가가 아님에도 그런 척,

작가라는 단어는 한 개인의 삶을 쥐락펴락하는,

굉장히 기이奇異하면서도 무서운 직업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졸작을 출간하고 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금 일이 들어올 때까지 머리를 식힌다는,

같잖은 논리로 놀기(쉬기)만 했었습니다

나는 재수가 ‘아주’ 좋아서 약 4년을 간격으로,

작업을 재개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문의 또는

출판사에서 회의(주제를 정하거나)를 거쳐 일이 주어졌었습니다

쓰고 읽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임을 망각한 채

운수 좋은 날처럼, 이 반어의 뜻을 거스른 채

고갈되어 가는 행운을 소진해버린 것입니다

2년이 되어갑니다만 출판 경기가 나빠진 그때서야,

마지막 원고가 출판사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나서야,

상한 자존심을 뚫고 지난날의 과오가 스쳤습니다


현재 나는 매우 만족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알찬 반성의 시간이 아닌,

햇볕과 비와 구름과 적당한 바람을 양껏 받으며

제대로 영글어가는 계절(공부) 안에 있습니다

2년 전의 원고(계약서를 쓰고 진행한 상태였지만)마저 출간이 되었더라면,

나는 확언하건대 불변할 허영심과 자만에 갇혀

허울만 있는 쭉정이의 삶만을 영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무의미하게 죽었을 것입니다


쓰다 보니,

실패(좌절, 불행)는 때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살리는’,

반어법의 가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행운만이 대단한 것이 아닌, 그 뒷면의 ‘불행’ 또한

명명된 뜻으로만 오해를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어(말이 아닌) 또한 인간이 발명해 낸 것으로

우리가 사용(사유)하는 모든 언어의 뜻에는 어쩌면

커다란 비밀의 통로가 있는 것은 아닐지.


쓸 수 있다(썼다)는 안도감은 순수한 행복입니다

글을 쓰고자 하는 분(작가 지망생)들께 당부드립니다

하루 한 문장이라도 꼭 쓰시길 요청하며 작가란,

쓰는 직업임을, 읽는 직업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자유직업자임은 확실하나 하루라도 쉬어서는 안됩니다

‘작가’도 내 심연으로 출퇴근을 하는 회사원입니다


+[연작시] ‘그대에게’는 토요일 초고를 작업한 다음, 하루 3번 이상 퇴고를 본 후 금요일에 발행됩니다.


광복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신 모든 분들께, 또는 애쓰신 분들과 그분들의 가족들께 경의를 표하며. 대한민국이란 땅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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